가을을 만나러
경기도 포천, 명성산에 오르기로 결심한건 바로 어제, 아니, 오늘이었다. 그것도 새벽 두 시경.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올 여름, 계곡물에 발 한번 담궈보지 못하고 지나온 것이 내내 섭섭하던 차였다. 여름도 가고, 그렇다고 가을이 왔다고 느낄 수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선, 가을비라며 연신 떠들어댔지만, 창 밖 어디에도 가을을 느낄 만한 풍경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다. 어딘가에 찾아왔을 가을을 만나고 싶어서....
서울을 벗어나
명성산까지 가기 위해 일단 동서울 터미널에서 운천까지 가는 신철원행 버스를 타야 했다. 운천에서 내리면, 다시 산정호수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여기까지 들
어가는 버스의 배차간격이 근 한 시간 간격이라 운천까지 가는 버스를 잘 계산해서 타는 것이 좋다. (참고로 운천까지 가는 버스는 약 20분에 한 대씩 있음) 물론 나는 혼자놀기에 대한 재능(?)이 탁월한 까닭에 약 50분 가량을 착한 아이처럼 아주 자알 놀면서 기다렸다.
산정호수로 가는 버스.
동네를 한바퀴 돌고오니, 산정호수까지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되어 있었다.
그냥 앉아서 기다려야겠단 생각에 버스에 올라탔는데, 할머니 한 분이 먼저 앉아 계신다. 12시 정각, 버스에 오르신 기사 아저씨는 나와 함께 타고 계시던 할머니와 안면이 있으신지, 안부를 물으신다. 그리고 뒷쪽에 앉은 내게도 눈인사를 하신다.
산정호수까지 가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더 타셨는데, 버스에 오르시더니 기사아저씨와 나누는 대화가 정겹다.
“우리 할매 어디갔어?”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이걸 누구한테 물어”
나중에 기사아저씨가 “아까 앞 차 타고 올라가셨어” 하고 인심좋게 웃어보이셨다.
이 곳은 훈훈한 사람 사는 냄새가 육중한 고철덩어리들에 묻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후에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이 마음씨 좋아 보이는 기사아저씨가 운행하는 버스를 또 타게 되었는데,
“정상까지 갔다 온거에요? 어, 그래도 빨리 내려왔네. 갈대밭 참 멋지죠?” 하고 아는 척을 해주셨다.
물소리에 마음을 적시다
산정호수 정류장은 버스의 종점이었다. 내렸더니 공기가 꽤 차다. . 산에 들어서는 길까지는 예쁜 펜션들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성수기가 아닌지라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나 그렇듯, 묶어놓지 않고 방목하듯 키우는 똥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대며 날 반겨주었다.
안녕, 똥강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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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초행길에 들어서니, 벌써 물소리가 들린다. 물과 흙, 그리고 나무의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숲의 향기가 더욱 진하다. 계곡물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작은 곤충과 새들, 그리고 바람의 소리가 물에 젖어 온 산하에 울려퍼지면 그 속에서 나는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채 서있게 됨을 느낀다. 그리고 이 순간이 내게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 꽃같은 미소로 인사하기.
산에 가면 뜨문뜨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도시 속에서 사람들을 뜨문 뜨문 그저 보.게.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이 참 아이러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끔 오해를 받는 것이, 길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면 외국인들이 가볍게 눈인사라도 주고받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그저 쌩까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산에서는 그것이 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산행을 오래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러해 보인다.
보통 혼자 산에 오르다 보면, “어머, 학생 혼자 올라가? 여기 위험해, 군인도 있고 혼자가기 무서워. 아줌마 말 들어.” 하시거나, “아직 올라온거 이거 새 발의 피야. 아직 한참 멀었어. 아니, 근데 학생 혼자 왔어? 이 산 혼자는 위험해. 아저씨가 같이 가줄까?” 하며 애 다루듯 걱정하신다. 여자애 하나가 동행하는 사람 없이 혼자 빨빨거리며 산을 오른다고 하니 걱정이 되시나보다. 하지만 이런 걱정어린 말들도 나는 그저 좋기만 하다.
총소리가 들려도 겁먹지 말지어다.
산 중턱쯤을 오르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총소리가 났다. 순간 좀 무서웠지만, 군사훈련지역이라는 것을 모르고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총소리도 점점 커지고, 여러 종류의 총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덜컥 겁이 났다. 웬 걸, 바로 앞에는 ‘사격중’ 이라는 팻말이 위협스럽게 붙어있었다. 곧이어 장거리에 대포같은 것을 날리는 소리도 났다. '아, 정말 장난 아니구나, 다들 미쳤구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돌아오던 길로 뛰어갔다. 정신 못차리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다 정말 반갑게도 올 때 지나쳐 왔던 군인들을 만났다.
“저기요, 여기 산 계속 오르면 안돼요?”
“아....... 괜찮은데요? 계속 오르셔도 돼요”
“근데 이거 총소리 뭐예요, 정말 올라가도 괜찮아요?” 마치 니가 쐈지, 하고 몰아붙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네, 사격연습 저쪽에서만 하는거라, 계속 오르셔도 되는데......” “...네”
마치 총 한방 맞은 애처럼, 재차 물어보고, 다시 발길을 돌려 산으로 향하는 내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군인들을 뒤로 하고, 나는 몇 발자국 못가 진흙에 미끄러져 허우적댔다. 아마, 그 군인들, “쟤 좀 모자란 애 아니야?” 했을 거다.
아닌게 아니라 그 와중에 진정, 그 어 느때보다도 통일의 절실함을 느꼈다.
갈대꽃밭에 들어서다.
겁에 질린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총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나는 죽지 않는 구나, 하는 바보같은 진리를 깨달아갈 때 즈음, 드디어 사진으로만 보던 억새밭이 나타났다.
뭐랄까, 아까의 공포는 씻은 듯 사라지고, 정말 천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흐린 하늘 아래, 하얀 억새꽃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광활한 억새밭 한가운데에 혼자 자그마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이 내려다보이는 착각까지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 사이로 마치 홍해의 기적처럼 길이 나 있었다. 나무로 뒤덮혀 햇살을 볼 수 없었던 터라, 점차 개이기 시작하는 파아란 하늘은 정말 천국이 있다면 이럴까, 하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억새밭을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마치 소라껍질에서 들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삼각봉에서...
가만 보면 산도 중독성이 있다. 정상인가 하고 올라가 보면 그 뒤에 좀 더 높아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때문에, 이제 그만 가야지, 하고 내려가려해도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답답하여 다시 발길을 돌린다.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이것도 어쩌면 내 욕심 때문일 것이다.
내 작은 발 아래로 고요하게 숨 쉬고 있는 산새가 펼쳐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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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이에요. 겨울임을 감안하면 그 시의성도 적절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 눈길이 가지 않는 곳에 대한 포스팅.
하지만 이 블로그 어디선가에서도 말을 한 거 같은데, 팩트가 부족해요.
이것이 기사라 치면 예산에 대한 내용과 용역에 대한 내용에 그 기사 결핍의 원인이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