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촛불집회 진압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한 의경이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젊은이들이 폭력적인 억압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건지, 그 정당성은 누가 보장해주는 지" 를 사회에 질문했다.
기자회견 후 4일이 지났다. 그리고 그는 전의경 폐지를 주장하며 서울 양천구 신월동성당에서 무기한 농성 중이다.
저녁 1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신월동성당 앞은 여전히 환했다. 이길준 의경에게 힘이 돼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개표도 마무리 되어 갈 시간, 어울린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올해 21살인 대학생 Y씨는 4일 째 매일 찾았다고 한다.
“기자회견을 본 후 바로 성당으로 왔어요. 매일 왔고 이틀 밤을 샜어요. 경찰들이 성당 주위에 있으니 불안한 기운은 있어요”
이길준 의경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자,
“누구나 무엇이 옳은지는 생각할 수 있지만 행동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도움이 돼주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성당 앞 한쪽 테이블엔 몇 분의 아저씨들이 촛불을 켜고 앉아 있다. 윤경호 씨(55)와 윤승재씨(44)는 이길준 이경을 지지하러 성당에 왔다가 처음 만나 4일 째 매일 보고 있단다. 특히 윤경호 씨는 4일 째 밤새 이 곳을 지켰다고.
“말 그대로 전투경찰이 불합리하고 폐지하자는 거다. 불합리한 제도가 청년들이 딜레마에 빠지고 가책을 느끼게 한다. 이일준 이경은 군복무를 하러 왔는데 잘못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고, 시민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거다.”
“시민과 전의경이 본의 아니게 원수지간처럼 돼 있다. 전의경과 대치하면서 그들이 양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슬펐다. 그게 굉장히 고통스러웠는데 양심선언한 의경이 나오자 큰 위로가 되더라. 그래 너희도 마음이 아팠구나.. 하는.
이일준 이경의 양심선언을 거울삼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자는 거다. 그가 왜 양심선언을 해야 했는지를. "
또 윤경호씨는 이일준 의경에 대한 비난을 안타까워 하며,
“이건 잘못된 복무제도에 대한 거부다. 군복무 거부했다든지 탈영했다든지 라는 말로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부당한 명령 앞에선 제2,3의 선언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건 양심의 가책 문제다. 이걸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인간성을 위한 저항이다. 왜 잘못된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들 앞에 청년들을 방패막이로 삼느냐” 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승재씨는 집단 내의 내부 고발자가 자꾸 나와야 하고 그래야만 사회가 투명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이일준 이경의 모습이 밝고 평화로워 보여 보기 좋았다. 난 이렇게 소수적인 개인의 양심선언을 좋아한다. 각계 각층의 양심선언을 통해 사회가 다양하고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양심선언이 자꾸 나와야 사회가 투명해지지 않겠나.”
“한두 사람의 양심선언으로 전의경 제도가 당장 폐지되진 못하는 사회구조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자꾸 나오고 더 전진하다보면 폐지될거다. " 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부가 겁을 주겠다는 식으로 대응만 하지 말고, 왜 양심선언 해야 했는지를 깊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마음만 먹으면 여기 지키는 시민들 아랑곳않고 이 이경을 연행해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지키는 건, '끝까지 지켜보고 함께 하면서 최후의 증인이 되어주자는 마음'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정권은 유한하고 국민은 무한하다’ 는 말과 함께.
아래는 [이길준 의경 양심선언문] 전문.
more..
[이길준 의경 양심선언문]
저는 지금 현역 의경으로 복무를 하다 특별외박을 나와 부대에 복귀하지 않고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려 합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결정이 야기할 수많은 소통과 상처들, 특히 제 부모님이 겪으실 일을 수없이 생각했고, 그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과정은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항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꽤나 거창하게 들리죠. 하지만 제가 하려는 일은 엄청난 대의를 가진 일이 아닙니다. 단지 삶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가지고, 저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그렇습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지난 2월, 지원을 통해 의무경찰로 입대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수많은 비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제 결정과 관련해서 말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면 저나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일에 복무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의무경찰이었죠.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무책임한 선택이란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퇴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경으로 있는 동안 제가 느낀 건, 언제고 우리는 권력에 의해 원치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달 간의 촛불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촛불을 들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 요구, 공기업,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대 같은 것들이 이런 목소리로 느껴지더군요.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모였고, 여러 모습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비장한 투쟁이 아닌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위한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삶을 위협할 수 있는 권력에게는 소통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또래의 젊은이들과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들을 적개심을 가지고 맞붙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죠. 저와 같은 친구들이 특별히 악랄해서 시민들을 적으로 여기고 진압해야 했을까요? 모두가 저처럼 가족과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복무하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 누가 집회를 참여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갔겠어요. 하지만 권력은 시위대는 적이 아니라고 명심하라는 위선적인 말을 하며 실질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 시민들을 적으로 상정하게 하고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힘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집니다. 방패를 들고 시민들 앞에 설 때, 폭력을 가하게 될 때, 폭력을 유지시키는 일을 할 때, 저는 감히 그런 명령을 거부할 생각을 못하고 제게 주어지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권력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암묵적으로는 그저 적으로 상정된 시위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덮고 합리화를 시키는 거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압작전에 동원될 때도, 기약 없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를 받을 때에도 아무 말 못하고 명령에 따라야 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따르는 건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제가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를 생각하면 더 괴로워지더군요. 누구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서라면 갓 스물의 젊은이들이 폭력적인 억압의 도구가 되어도 괜찮은가요? 그런 정당성은 누가 보장해주나요?
힘든 시간 동안 전 일단 어떤 식으로든 도피를 모색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도피는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에 있든 제가 그곳에 남아 있는 한 결국 억압의 구조를 유지시키는데 일조할 것이고 그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일 뿐이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남은 삶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금 저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명령에 순응하고 가해지는 상처를 외면하면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적이고 껍데기 뿐인 인간으로 남을 거란 불안도 있었고요.
가해자로서, 피해자로서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고민 속에 흐려져가는 삶을 정립하는 방법은 저항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제 삶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늘 타협했을 뿐 자신있게 저항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이번 기회는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느껴졌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겠지만 제가 원하는 저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전 스스로를 어지러운 정국의 희생양이나 순교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탄 영웅이 되고 싶은 건 생각도 없어요.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어떤 이득을 취할 생각도 없고요. 전 단지 스스로에게 인정될 수 있고, 타인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에요.
비장한 각오의 투쟁을 선언하고 싶진 않군요. 전 저항의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억압의 조건은 힘겹지만 그에 대항해 자신을 찾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무겁게 받아들일 일만은 아니에요. 저도 노력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나가는 것도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제가 한 행동을 통해 저는 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고 느끼고, 아울러 폭력이 강요되고 반복되는 지금의 구조들도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상처를 받을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는 일만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끝으로 제 얘기를 듣고 저를 도와주시며 지금도 함께해주시는 많은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못난 아들을 위해 상처를 감수하고 이해하고 제 편이 되어주시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길준
트랙백 주소 :: http://on20.net/press/trackback/33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