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보인다.
우선, 촛불을 주도하는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신문에서는 연일 '배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배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좌파정당이 시위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흐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번 촛불은 좌파정당이 구심이 되어 이끄는 저항이 아니다.
예를 들어 2003년 영국에서는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런던에서 최대 200만명이 참가한 이 집회는 노동당과 좌파정당이 이끌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총파업이 벌어져서 공항, 철도 등이 모두 가동을 멈추는 힘을 발휘했다. 이런 저항은 조직된 형태로 좌파정당이 조율하면서 가능한데, 한국은 정당구조가 워낙 취약하다가 보니 이런 식의 저항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진보정당이 한국에서는 이렇게 힘이 없을까?
진보정당의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레드 컴플렉스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진보정당의 자업자득이라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공당임에도 불구하고 당을 운영하는 방식이 80년대의 지하서클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당으로서의 구조가 아직 취약하다. 공당이라면 대중적으로 열린 소통구조 속에서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의사가 반영되고, 운영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운동권 동호회'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비판은 여기에서 제기된다.
예를 들면 작년에 이랜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하여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당시 (구)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당 상근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당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정파나 트로츠키주의 정파 등 일각에서 '당은 자본세력이 아니다'라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접근만 하고 있었다. 자기 내부 노동자에게도 이 정도로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에 무엇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여기에 이후에 퇴직금 문제까지 겹쳤다. 좌파정당이 적어도 부르주아 정당의 정당성 마저도 확보하지 못하면 어렵다.
촛불과 관련되어서 최장집 선생과 같은 분들이, 거리의 정치를 멈추고 대의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촛불을 수용하고, 이를 제대로 운용할 제도권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이상적일 뿐인 이야기이다.
또 한편으로는 김지하 시인 같은 분들이, 촛불에 대해서 '이런 저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만의 아름답고 대단한 형태'라는 식으로 찬양을 했다. 촛불이 의미있기는 하지만, 민중의 저항이 자본주의 체제 핵심에 그다지 미치지 못했다는 한계를 봐야 한다.
물론 이번 촛불집회 동안 좌파 정당의 지지율이 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잘못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중과의 소통도 부족했으며, 좌파정당의 선전이라는 것이 그다지 선전효과가 나지 않는 고루한 것이었다.
촛불 집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청소년들이 집회 처음에 촛불을 들며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의 청소년은 미래가 없다. 세계 최장의 학습노동, 최악의 학습 경쟁에, 이것을 뚫고 막상 대학에 입학을 하더라도 질에 비해 턱없이 높은 대학 등록금의 문제가 이들의 앞에 펼쳐져 있다. 이것은 개인에게 무한의 부담을 주는 것이지만 이 다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비정규직이다. 이러한 형태는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어느 시점부터 확연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장을 이끄는 것은 극소수의 대기업이고 이 또한 그들만의 성장일 뿐이다. 하청을 담당하는 중소, 영세 기업들은 가격 단가를 낮추라는 대기업들의 요구 때문에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자들은 매우 많지만 이들은 대부분 영세업자들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이 구조 하에서 당연히 제대로 된 고용기반이 설 수 없다. 단가에 대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처우를 고려하겠는가.
여러 사회 복지 제도들이 부분적으로 이들을 구제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가는 동안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을 더 심화시키는 것은 신자유주의로 비롯되는 세계화이다. 쇠고기 문제 역시 한미FTA 때문에 시작되었다. 한미 FTA를 통해 자동차, 핸드폰 등을 더 팔아보겠다고 하지만 이것이 청소년들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뻔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배후가 없어도 자연히 촛불이 켜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최악의 조건에 놓인 것은 여성노동자들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래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힘들게 투쟁을 하고 있다.
세계 노동사에서 1040일이 넘는 투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를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전례가 없으며, 죽음을 각오한 투쟁이다. 이랜드 투쟁에서는 전기가 끊겨 '자연스럽게' 촛불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싸움들은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자본은 양보하는 예를 남기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하게 나오고 있지만, 역으로 그래서 우리에게는 꼭 이겨야 하는 이유가 된다.
촛불집회에서 특이한 점은 한 가지 더 있는데, 비정규직 구호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박 너는 아무것도 하지마' 같이 참 독특히고 참신한 구호들은 많이 나왔고,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구호들이 나올만큼 다 나왔다고 본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더이상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관련된 구호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촛불집회의 처음에 그래도 시위할 여유가 있는 이들이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촛불집회에서도 보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한때, 철도 노조가 KTX비정규직 노조에 대해서 농성천막을 치우라는 지시 아닌 지시도 내렸던 예가 있다. 이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분리통치정책이 제대로 먹혔다고 판단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도 조선인들을 분리하여 이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데에 효과를 봤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분산되어 있는데, 역시 좌파정당은 이들을 묶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촛불집회의 집행부는 특히 좌파정당보다는 시민운동 세력이 위주이다. 이들은 중산 계층 중심인 참여연대나 '굴욕협상'을 반대한다는 자주파 계열의 한국진보연대같은 단체들이다. 이들이 집중하는 것들은 일정부분 취약계층과의 괴리가 있다.
미친소, 미친교육에 대한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미친고용'으로 가는 상황에 대한 구호가 필요하다. '식탁 안전'이 아니라 '식탁 확보'가 힘든 이들에게는 '미친소 반대'가 배부르다는 느낌도 들 수 있다.
비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정당방어 이상의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계급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저항이 시작되면 현존하는 사회구조에 대해 갈등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다면 자기방어적인 태도들이 당연히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총파업이 그러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비폭력을 외치는 양상을 봤을 때, 이것은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합법적인 방법 속에서 타협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중산층들의 저항 양상이다. 촛불에서 계급갈등에 대한 부분이 비폭력이라는 구호에 함몰된 것 같다.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본질을 볼 수 있다.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이명박 정부를 독재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렇게 앉아서 강연을 할 수 있는 상황은 개념적인 독재와는 거리가 좀 있다. 진짜 독재라면 긴장 속에서 앉아있기도 어려울 것이다.(웃음)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보기에는 더욱 어렵다. 예를 들어 이번에 엠네스티를 고소하겠다고 하는데, 대체 어떤 자유민주주의 정부에서 그러하는지, 웃긴 일이다. 엠네스티가 어떤 단체인가. 부르주아 조직에 꽤나 얌전한 조직이다. 촛불집회자들과 함께 부상당한 의경들 양쪽 다 인터뷰해가며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답은 '소송하겠다'. 이런 태도를 보인 곳은 자유민주주의 정부 중에는 없고, 구소련의 태도나 이스라엘 극우 정권, 브라질의 80년대 독재 정부 대응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세계 근대사가 보여주는 것은, 시민 사회의 '자발적 동의 유발'없이는 지배계급의 정책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참고), 시민사회는 저항보다는 어떻게든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이명박 정부는 더욱 강압적으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시민단체 대표들을 조계사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 영국에서도 3,4개월 전인가 부시의 방문을 반대하는 집회에 대해서 조금 강한 진압을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강력한 진압의 예가 없었다.
지금 한국은 독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도 아닌, '강성 신자유주의' 정부 형태이다.
게다가 한국의 산업은 극소수의 대기업이 산업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치에서도 극소수들의 발언권을 극대화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일본, 미국 등은, 그람시의 표현에 따르면, 연성 자유주의 형태로 시민사회를 적절하게 압박하는 국가형태를 띄고 있다. 시민사회의 리더에 대한 포섭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우경화, 신자유주의 등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도 안된다.
앞으로도 조직되지 않은 대중의 산발적인 저항이 예상된다. 특히 비정규직의 연속적인 저항은 필연적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영국 정도면 바로 총파업으로 갔을 수준이다. 한국은 저항이 조직화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을 뿐이다.
정부의 실정이 또 하나가 생기면 시민사회가 저항하고, 이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압하면 잠시 수ㅡ러 들고, 다시 국지적인 저항이 생기는 반복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최진은 안되겠지만, 5년 내내 투쟁이 생겨 '비호감 정권' 정도로 남을 것이다. 퇴진이 안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소수의 산발적인 투쟁으로 퇴진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보수 패거리가 많고 자본을 독점하고 있어서 확대 재생산이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이 아닌 다른 세력들이 5년동안 이명박 정부를 잘 때리면서 동시에 '성장'을 약속하는 박정희주의를 이야기하며 집권할 수 있다. 단, 일본형 장기 보수화는 안될 것 같다. 이들은 시민사회, 노동계급을 포섭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의 한국 사회 수준을 극복하는 질적인 발전이 있지 않고는,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지속될 것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좌파 정치이지만, 이 역시 아직도 '사변적'인 구호 형태로 남아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중적인 계몽사업과 개입력 증가이다.
대중적인 계몽 사업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진보적 세계관'을 교육하는 것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대면관계를 맺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얼굴을 맞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익명성의 도움으로 인터넷에서는 잘되는 편이다. 게다가 연령주의와 같이 지위관계에서도 일정부분 멀어지는 효과가 있다. 사안들에 대해서 그때그때의 논평 정도만 내고 있는 상황은 해결책으로 매우 부족하다. 오마이뉴스 같은 사이트를 통해 '진보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에 대한 피해 케이스마다 진보정당이 함께 하면서 개입력 증가를 꾀해야 한다. (구)민주노동당이 최초로 함께 했던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작년 이랜드 사태일 정도로, 진보정당의 개입이 늦고 적다. 늘 함께한다는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진보신당이 생긴 상황에서 이제는 내부에서 이념대결을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민주의 정치 정도라도 지금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엄청난 진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