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을 던지는 '있는 자'의 여유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2008/07/17 17:09
소주를 기울이며 임선생님의 예전 러브스토리를 듣고 있는 와중에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여름이라 실외까지 자리를 넓게 펼쳐 놓은 곳이라 우리는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안쪽에서 누군가가 아르바이트생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동네 사람답게 자기는 자리에 앉아 있고 종업원은 서서 듣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고 있는데 이 사람이 소주병을 들더니 그대로 종업원에게 던졌다.
그랬다. 소주병을 던졌다. 종업원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하면서 소주병의 병목이 날아가고 소주가 마치 분무기로 뿌려진 것처럼 하늘로 흩어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제서야 다른 종업원들이 맞은 사람을 감싸고 섰다. 그는 황당한 듯 뒤로 물러섰다가 곧 손님에게 걸어가려했다. 다른 종업원이 말렸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종업원의 이마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병으로 맞았을 때 피가 바로 나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피가 흐른다. 처음 알았다.
그 작자는 소주병을 사람에게 던지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플라스틱 물병을 또 던지려했다. 저런 인간 말종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의 옆에 친구가 두 명이나 앉아있었는데 말리기는 커녕 한 녀석은 미소마저 짓고 있었고 다른 한 녀석은 등을 의자에 기댄 채 사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돈 있는 집 자식들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저따위로 대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나 궁금했다. 종업원들은 그를 일단 진정시켰고 다친 사람을 주인에게 데려갔다. 주인은 우리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정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상황을 몰랐던 것 같았다. 다른 종업원들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주인은 일단 종업원을 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무언가 액션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 자리 뒤로 다친 사람이 걸어가느라 흘린 피를 닦으라는 지시를 다른 종업원들에게 내렸을 뿐이었다.
뭐야 이건?
같이 술을 먹던 송선생님이 사고친 녀석과 그 친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저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당장 자리를 떠야 정상이지. 이유는 두가지네요.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거나, 돈이 엄청나게 많거나.나는 새로 오신 선생님과 자리를 빠져나와 담배를 피웠다. 이거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인지 묻는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하지 않은가, 하면서 자리로 돌아왔는데 경찰이 와 있었다. 사장이 신고를 한 모양이다. 하긴, 피만 닦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사고친 녀석은 경찰을 보고서도 당당하다. 종업원 나부랭이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그리고 옆 테이블을 발로 찬다. 공무집행방해 추가요.
녀석이 경찰차에 실려가고 장선생님과 송선생님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분위기가 흉흉하니 여자 선생님들도 계신데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때 사고친 녀석과 함께 있던 친구들이 일어난다. 그러자 주인이 달려갔다. 선생님들이 그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에 자리에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쟤네들이 돈을 안내고 가고 있다네요. 아까 잡혀간 놈이 내기로 한 술자리라나?
.....
나중에 자리가 파하고 집에 가기 위해 걸어나왔는데 사고친 녀석의 차가 서 있었다. 벤츠였다.
그렇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돈많은 놈이 세상물정 모르고 술집 종업원 따위 인간 취급도 안 하고 산다는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건희가 당당히 집행유예 받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걸어나오는 꼴을 TV로 봐야 하는 세상이니 이야기의 주제가 간만에 떠오른 '유전무죄 무전유죄'일 수도 있겠다. 집에 가면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도 그랬다.
어차피 저런 놈은 알아서 풀려나오게 마련이야. 지금은 그 맞은 녀석에게 가장 좋은 사후처리가 뭐냐는거지. 돈을 받아야지. 많이. 병을 던져서 사람을 쳤으니 맞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 말야. 돈 많이 받아내고 이러나 저러나 풀려날 놈은 신경쓰지 않는 것이 상책.그러나 나에게 다가온 것은 다른 의미였다.
그 난리가 나는 와중에 테이블 어느 곳에서도 남자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맞은 종업원을 대신해 그 작자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 일이 아니니 신경끄자는 모습들. 맞은 종업원이 지나가자 사건에 최대한 말려들지 않기 위해 의자를 앞으로 당겨앉는 사람들 뿐이었다. 술병으로 사람을 치는 난동을 부리고 있는 데도 말릴 생각조차 없는 친구들, 같이 술먹던 친구가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잡혀갔는데 돈은 저녀석이 내기로 했다며 일어나는 친구들이었다. 종업원이 맞아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잽싸게 핏자국을 지우고 조용히 있으라는 주인. 송선생님 말마따나 그 녀석들이 생각이 있어서 바로 도망가버렸다면 어떡하려고 그랬을까?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
모두가 현명하게 대처한 것이다. 그래, 현명한 것이겠지. 사실 경찰을 부르고 함으로써 10여분만에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사람들은 다시 자기 이야기에 열중했다. 잡혀간 녀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만족한 이야기의 끝마무리. 현명한 대처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이 부끄러움은 내가 현명하지 못한 인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긴, 이렇게 미소짓고 있는 자에게도 우린 침묵하는 데
저런 아버지 잘 둔 잔챙이 따위에게는 말려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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