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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그저 6월 25일을 맞아 떠오른 기억으로부터 짧게 써나간 글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달아주시고 있습니다. 여전히 "민감한 소재"라 글을 올리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블로그를 개설한 목적이 저의 좁은 사고를 벗어나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냥 올렸습니다. 글에 대한 수정은 따로 없이, 제 생각을 댓글로 님들과 나누겠습니다.

  내가 6.25 노래를 불렀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 1994년이다. 물론 그보다 어린 나이였을때도 매년 6월 25일에는 6.25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반공 표어를 쓰고, 포스터를 그리고 6.25 노래를 부르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원래 이데올로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 깊숙히 침투하여 인간을 조종하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기억이 난다면 그것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잠재적인 사상에 금이 가게 하는, 어떤 일이었을 것이다. 1994년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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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교(출처: http://www.dgseongnam.es.kr/)

  6.25노래를 다시 한 번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섬뜩한 가사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요즘 군가도 저 정도는 아니다.

(1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2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 흘려온 갚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언제나와 다름없이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떠들고 장난치면서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숙제로 해서 냈던 반공 표어, 포스터 시상식이 있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교직 3~4년차 정도로 기억되는 선생님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풍금 앞에 앉으시기는 하였으나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는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너거뜰, 통일이 되어야 된다꼬 생각하나?"

  "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학생들은 "네!"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가 뭐래도 통일은 되어야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그때도 최고 인기 동요곡 중의 하나였다.

  "그라모 여기 6.25 노래의 가사를 함 읽어보면 우리가 통일을 해야될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하노?"

  "..."

  6.25 노래 어디에도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반공 비디오에서 배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또래의 북한 어린이는 없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채 김일성 배지를 차고 억지 웃음을 짓고 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사람도 없었다. 그곳에는 조국의 원수불의의 역도, 멧도적 오랑캐, 적의 무리 뿐이었고, 그들에게 국민학교 6학년짜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조리 쳐부수고, 피의 원한을 풀며, 쫓고 또 쫓아 하나도 남김없이 무찌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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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이 노래를 왜 너거뜰이 지금 배워야 되는지 이해를 몬하겠다. 그리고 이 노래를 배우면서 동시에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웃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에서 6.25가 되면 너거뜰이랑 같이 부르라고 했으니까 부르자. 그래도 한 번은 이 노래에 대해서 생각해봐라."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처음 뵈었던 담임 선생님은 굉장히 연세가 많은 분이셨다. 그 분은 수업시간에 "괴뢰군이 무슨 뜻인지 아나?" / "아니오!" / "북한 빨갱이들을 말하는 거다! 까부숴야지!" 등을 국민학교 1학년들을 상대로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물론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이셨다. 그분이 겪어야 했던 아픈 과거가 좋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8살짜리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가르치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맞은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6월 25일에 젊은 여선생님이 말씀한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6.25 노래라는 것을 기억하게 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는커녕, '옳다'와 '그르다'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었던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것이 그 이유다.

  또다시 6.25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이나 실제로 남한을 침략한 김일성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의 뒤에 서서 최초의 이데올로기 대결을 일본으로부터 갓 해방된 이 나라, 이 땅에서 벌인 미국과 소련의 가증스러움도 똑같다. 그렇다면 6.25에 대하여 논할 때 그런 명분없는 전쟁에 희생된 남북한 민중들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야 함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핀트를 다른 곳에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처럼 그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분들이 갖고 있는 기억과 그 분들의 생각에 토를 달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가족의 생명을, 친구의 자유를, 연인의 평화를 위하여 적(서로가 같은 입장에서 '적'이 되어버렸다.)과 싸웠던 사람들을 어떻게 욕하겠는가.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비판하겠는가. 그들은 희생양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마치 집회를 막으러 나온 전경들이 분명히 집회의 정당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주변의 동료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욕을 먹는 것을 보고 폭력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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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 연인을 위해 싸운 이 분들을 어찌 욕하겠는가(출처: 연합뉴스)


  문제는 아직도 이것을 '이용하려 드는' 자들이 건재하다는 것일게다. '조국해방전쟁' 운운 하는 북한의 지도부나 '친북좌파빨갱이'라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단어를 내뱉는 남한의 저급한 정치인, 보수 언론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자들 때문에 6.25가 일어났으며, 이후 근 60년간 서로 고통받고, 피해입었음에도 아직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으니 가관이다.

  6.25는 결코 빛나는 승리의 기억도, 처절한 패배의 기억도 아니다. 6.25가 현재진행형인 것은 전쟁이 '휴전'되어서가 아니라 58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근본에서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전쟁 6.25, 이것은 우리가 분단 상황을 극복해야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수 있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결론이야 어찌되었건 2008년의 어린이들은 6.25 에 6.25 노래를 부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덧) 6.25가 전쟁이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너무도 일반적이고 당연한 관점에서 차라리 존 레논의 <Imagine>을 부르는 것은 어떤가? 영어라서 조금 그런가?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철망 앞에서>라는 좋은 노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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