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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에 대한 소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내려질 수도 있다. "외동아이"로 자란 하지메가 12살 때 느꼈던 시마모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30대가 되어 성공한 인생, 행복한 가정을 갖고도 여전히 남아있어 다시 나타난 시마모토에 의해 흔들리는 모습이 소설의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싸구려 통속 소설, 수많은 불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하루키는 그렇게 저렴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불륜이 불륜처럼 보이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사랑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인간 내면에, 인간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인간의 행위를 그려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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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래서 하지메와 시마모토가 25년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기 전의 대화가 천박해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털어놓고 있는 것이니까.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며진 사랑의 밀어가 아니라 25년을 기다려왔던 사랑의 고백이니까 말이다.

  "... 시마모토, 가장 큰 문제는 내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거야. 상실되어 버린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은 언제나 굶주려 있고 메말라 있어. 그 부분은 아내도 메우지 못하고 애들도 메우지 못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너 한 사람밖에 없어. 너랑 있으면 난 그부분이 충만해지는 걸 느끼거든. 그리고 그것이 채워지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어. 이제까지의 긴 세월 도안 내가 얼마나 굶주리고 메말라 있었던가 하는 걸 말이야. 난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

...(중략)...

  "나도 널 사랑해, 하지메. 난 태어나서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넌 모를거야. 난 열두 살 때부터 줄곧 널 사랑해왔어. 다른 사람에게 안기면서도 늘 널 생각했어. 그렇기에 난 널 만나고 싶지 않았어. 널 한번 만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하지만 만나지 않을 수 없었어. 정말로 네 얼굴만 보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막상 네 얼굴을 보자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고, 이성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어떤 것.

  왜 하지메는 소시민적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이루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는 끊임없이 시마모토를 기다렸을까. 시마모토는 하지메의 재즈바에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나타난다. 아마도한동안이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고, 아마도한동안이라는 말을 걸어둔 채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시마모토에게 하지메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25년을 "열심히 살면서" 기다려 왔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의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

  "한동안이라는 건 말이지, 시마모토. 기다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겐 길이를 헤아릴 수 없는 말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있어. 그런말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말이야"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아마도라는 건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말이야."
  "동감이야"라고 말하고 그녀는 여느 때의 그 가벼운 미소를 얼굴에 떠올렸다. 그 미소는 어딘가 먼 곳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네 말이 맞아. 미안해. 하지만 변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로서는 그런 말을 쓸 수밖에 없었어."
  "아무것도 나한테 사과할 건 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는 가게고 넌 손님이야. 넌 여기에 오고 싶을 때 오면 되는 거야. 난 그런 데 익숙해져 있어. 난 단지 혼잣말을 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신경 쓸 건 없어."

  그러나 시마모토는 사라진다. 지난 25년간 하지메와 함께 사랑을 나누길 꿈꿔왔던 것이 이루어지자 그녀는 사라진다. 아내도, 아이들도, 직장도 모두 버리겠다는 하지메를 둔 채 그녀는 한동안아마도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쩌면 시마모토는 실재(實在)하지 않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재즈바 '로빈스 네스트'로 찾아온 시마모토와 하지메의 만남에 대해 아는 자는 세상에 누구도 없다. 바의 직원들, 점원들마저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든, 하코네의 별장으로 가든 상관없다. 하지메가 만나고 있던 시마모토는 누구일까. 25년을 기다려온 그녀는 과연 누구였던 것일까.

  <양을 쫓는 모험>에서 태워버린 산장이나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끝없이 스텝을 밟아나가는 '나'와 같은 것이다. 시마모토는 하지메의 트라우마이자, 이상향이다. 그는 그녀를 마음 속에서 지워버려야 현실적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고도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시마모토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는 나날을 보내던 하지메가 아내 유키코에게 장인의 주식거래에 대해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주식 조작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이제 알겠어? 회사 내부에서 고의로 주가를 조작해서 인위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내게 해서 패거리들끼리 나눠먹는 거야. 그리고 그 돈이 정계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기업의 비자금이 되기도 하는 거야. 이건 예전에 아버님이 우리에게 권해 주신 주식하고는 얘기가 다른 거야."

  ...(중략)...

  "...난 그런 집에서 자랐다고. 당신은 800만 엔 정도밖에 돌리지 못했다고 했지. 하지만 말이야, 이건 진짜 돈이야. 모노폴리 게임에서 쓰는 종이돈이 아니라고. 보통 사람들은 말이지, 매일 아침 만원 전철에 흔들리며 회사에 가서 할 수 있는 한 잔업까지 해가며 뼈 빠지게 1년 내내 일해도 800만 엔을 벌기는 힘들어. 나도 8년 동안 그런 생활을 했어. 말할 것도 없이 800만 엔이나 되는 연봉은 받지 못했지. 8년 동안 일하고 난 다음에도 그런 연봉은 멀고도 먼 꿈이었어. 아마도 당신은 그게 어떤 생활인지 모를 거야."

  ...(중략)...

  "당신은 투자한 돈이 보름 만에 확실하게 두 배가 된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800만 엔이 1600만 엔이 된다고 말이야. 난 하지만 그런 감각에는 뭔가 잘못된 데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잘못 속으로 조금씩 휩쓸려 들어가고 있지. 아마 나도 그 잘못에 가담하고 있을 거야. 나는 요즘 들어 조금씩 내가 텅 비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시마모토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하지메는 자본주의적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 그의 본성이었던 "외동아이", 더 크게 보면 인간 자체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그러나 그 방법은 너무도 교묘하다. 때로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해오고, 때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며 유화적으로 자극해온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인간은 인간 본성을 잊게 된다.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비어가지만 이에 반해 통장의 잔고는 조금씩 조금씩 메워진다.

  그가 소위 고도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에 불과한, 짓눌러 놓은 본래의 인간성을 계속 자극하는 시마모토를 지워야 한다. 그러나 시마모토를 지우고, 또다시 억누르면 그는 '생존'에의 갈구만이 남은 자본주의적 동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사랑하는 가족은 별개의 문제다. 만약 그들까지 끌어들여 생각한다면 하지메의 머리는 폭죽터지듯이 찬란하게 폭발해버리고 붉은색 잔영만 남긴 채 사라질 것이다.

  시마모토가 사라진 후, 그는 천천히 돌아온다. 아내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 놓는다. 길에서 시마모토의 화신을 만나고, 이즈미(이 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즈미는 '평범한 삶'에 대한 하지메의 트라우마이자 이상향과 같은 존재다. 그녀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의 환영을 본 후 다시 삶을 본 궤도에 올린다.

  현실적으로 지극히 "올바른" 결론이다. 다른 하루키 작품들과는 달리 하지메는 돌아올 곳이 있었다. 그러면 유키코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가, 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게다. 그러나 불륜을 조장(?)하려는 작품이 아니니만큼 그런 반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처럼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되묻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적당히 장인으로 대표되는 비뚤어진 자본주의상에 선을 그어둔 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자본주의가 어떻고, 물질주의가 어떻고, 파시즘이 어떻고 하면서도 자신이 발딛고 있는 곳에서는 적당히 그런 것들에 맞춰주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지메의 삶이 아닌가 한다. 옳지 않은 것을 보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하기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우리는, 인간 본성을 서서히 잃어버려 가는 우리는 그래도 그런 것들과 선을 그으려는 노력을 하면서 유키코와의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밖에 남을 수 없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슬픈 느낌이 드는 그런 소설이다.

덧) 시마모토와 하지메의 관계가 세상에서는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는지는 그들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기 전 시마모토의 행위로서 알 수 있다. 관념과 현실의 관계. 관념은 현실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읽어도 될만큼 표현의 수위가 낮다(?)고 볼 수는 없으니 내용을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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