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때론 멀리 떠나고플 때가 있다 - 급여행기 2
찜질방에서 자고 나왔다. 서울로 올라가긴 해야겠고 그냥 가긴 아쉽고 해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무슨 회를 살 것도 아니고 어시장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산'에 왔다면 '자갈치 시장'은 보고 가야지 않겠냐는 일종의 부담감(?)은 있었다. 마치 멜번에 들렀으면 크라운 카지노에 들러야 한다거나 시드니에 갔다면 달링 하버에서 사진을 한 판 박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울은 지금 남대문을 잃었으니... 어디를 가야할까?
망월동에서부터 자갈치-남포동을 보기로 했다. 망월동은 서울의 장안동과 같이 성매매 업소가 즐비한 곳이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여기는 아직도 몰래 영업(?)을 한다고들 한다. 일본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지란다. 나라 안에서 성매매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손쳐도 다른 나라사람에게까지 섹스산업이 알려지는 것은 아무래도 탐탁지 않다. 낮이라 무얼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그냥 그 쪽을 지나서 걸어내려왔다. 생각해보니 대낮에 이곳을 지나간다고 해도 아직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알 길이 없다. 쓸데없는 걸음을 했다 싶었다.
도로 이정표를 따라 '자갈치'라고 되어 있는 곳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삼삼했다. 20년만에 와 본 도시임에도 낯설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투리 때문인 듯 했다. 서울에서 생활한 지 8년이 되었건만 여전히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면 정겹다. 말하기도 편하고, 의사 표현도 더 '정확히' 할 수 있다. 곳곳에서 '보소보소', '아잉교' 어쩌구 하는 말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여행을 하는 맛은 '낯섬'을 즐기는 것이어야 할진데 나는 오히려 서울보다 더 편안한 마음을 느끼니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자갈치 시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용산의 전자상가들이 '터미널 전자 상가'나 '전자랜드', '아이파크 몰'로 통합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좌판을 주욱 벌려놓고 장사를 하는 거대한 어시장을 상상했던 내게 깔끔하기 그지없는 자갈치 수산시장은 묘한 기분과 함께 다가왔다.
깔끔한 모습에 할말을 살포시 잃은 채 들어가서 구경했다. 역시 겉만 삐까뻔쩍할 뿐 안은 같았다. 경상도 아줌마들이 여전히 반가운, 그러나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결코 나쁜 표현이 아니다. 난 겉모습만 보고 이마트처럼 제복입은(?) 사원들이 생선을 팔 줄 알고 꽤 걱정했기 때문이다.
자갈치 시장 건물(?) 뒷편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난간도 설치되어 있었다. 난 거기에 기대어 멍하니 바다를 쳐다봤다. 끝없는 수평선이 있는 바다라기 보다는 곳곳에 배가 떠다니는 그런 바다였다. 조용하고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대양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있고 바다가 움직이는 그런 곳이었다.
날씨는 무척 좋았고 바닷물은 끊임없이 반짝였다. 우결의 서인영 말대로 블링블링했다. 평일 아침에 여기에 관광(?)온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일하는 분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아저씨는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 갔다. 40대 연인(?)이 와서 자지러지게 웃다가 가기도 했다. 나 또한 담배를 한 대 물고 하염없이 바닷물을 보다가, 떠가는 배를 보다가 했다.
옆에서 낯익은 말투가 들린다. 한국어는 아니다. 일본인 관광객인 듯 했다. 부산 또한 일본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게다가 자갈치 시장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아닌가. 그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나는 그들이 사진 찍는 모습을 다시 사진 찍었다. 왠지 '메타 사진찍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뭔소리야 이건-_-)
나는 무엇을 바라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을까? 어째서 중간에 한 번 숨 쉴 기회도 갖지 않으려 했을까? 벗어나고 싶은 대상도, 잊고 싶은 대상도 없는데 왜 스스로를 채찍질 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다는 저렇게 블링블링해대고 갈매기는 쓸데없이 끼룩끼룩하는데 말이다. 학점을 채워서 학교를 졸업해야 취직을 할 터이고, 날마다 5시간이든 6시간이든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활이 영위가 된다. 그것은 지금 내 삶에 있어서 일종의 필수조건들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이것들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딘가 있을 거대한 타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난간에 기대어 주변을 계속 둘러보았다. 어제 만났던 택시기사가 부산은 가로로 길다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못쓰는 산이 많아서 가로로 길어요. 무슨 말일까? 부산 지도를 생각해봤으나 그렇게 가로로 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가로로 길다. 서울은 크지만, 부산은 길어요.
자갈치 시장을 나와 건너편 남포동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엔 완전히 해운대에 초점을 맞추어 PIFF가 열렸으나 그 전까지만 해도 남포동이 PIFF의 중심이었다. 영화인들의 손도장도 이곳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쪽으로 가는데 한 할머니를 보았다.
시장에서 상인들이 입는 옷으로 보이는 천가지들을 리어카에 주렁주렁 실은 채 입을 앙다물고 어디론가로 향하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보고 뭔가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거나, 삶의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할머니를 보았다. 그 뒤로 사진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아침의 바쁜 일과를 끝내고 국밥을 시켜 소주와 함께 아점(?)을 나누는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아,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지, 따위의 감상은 없었다. 서울에서도 흔히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새삼스레 눈시울을 적실 것도 없다. 그렇게 사람이 사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학교에 앉아 취업얘기, 이명박 얘기, 임용고사 얘기를 하거나 아르바이트하러 가서 학생들의 푸념을 듣고 농담을 하는 것 이외의 삶을 오랜만에 보는 것. 그것으로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남포동은 뭐랄까, 낮에는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이다. 극장과 놀(?) 곳이 대부분이라 딱히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없었다. PIFF 거리라고 해도 생각보다 크거나 웅장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영화팬이라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주제에 더 이상 떠들지는 않겠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서 내가 건진 것은 역시 감독들의 손도장이 아닐까.
그리고, 무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손도장도 있었다. 이런 영광이. <복수는 나의 것>의 그 분 아닌가. 아, <복수는 나의 것>의 리뷰를 보려면 예전에 써둔 이 곳으로 → (2008/04/16 - [다시 글로 표현하는/빛의 예술] - 메마른 에노키즈와 현대인의 사막화 - 이마무라 쇼헤이, <복수는 나의 것>)
남포동 거리는 생각보다 좁았다. 그러나 어슬렁 어슬렁 걷다보니 그냥 기분이 편해지는 그런 것이 있었다. 내 고향 대구는 사실 중앙로와 동성로가 지나치게 번화하다. 거의 모든 상가가 그곳에 밀집되어 있고, 또 매우 거대하다. 문제는 그것 이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부산은 서면이라는 큰 상권이 있음에도 또 남포동도 이렇게 있었다. 좋았다.
부산극장.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 든다. 대구극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롯데 시네마가 있고 중앙 시네마가 있고 씨너스 G가 있어서 대구극장에 가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냥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무작정 내려왔다. 좋은 친구들 덕분에 해수욕장도 구경하고 밥도 얻어먹고, 회도 먹고 그랬다. 기차에 그저 몸을 실은 채 전화 한통으로 3년만에 보는 친구와 호주에서 기껏 3일 봤던 친구가 나와주니 그저 감사했을 따름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는 나 때문에 빼앗긴 시간이 되지 않았나 걱정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아보고 나서야 '내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시간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해질 만큼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봐야 하지 않을까. 안되겠다, 안되겠다, 나 정말 쉬고 싶다! 란 말이 가슴 속에서부터 터져나올때까지 말이다.
부산급여행은 마냥 좋았다. 오랜만에 바다를 봐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뭐, 그런 것이다.
덧) 아, 부산 지하철에 대한 단상.
1. 부산은 '충전'이 아니라 '보충'이다.
2. 부산 지하철 역사는 생각보다 천장이 낮다. (부산의 기백은 어디에!)
3. 부산은 전철이 출발할 때 뱃고동(?) 소리가 난다.
허허; 그러고보니 이것은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이 안되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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