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



09월 27일 AM 12:00
처사샘에서 30분 정도로 걸어 내려오면 불재입니다.
바로 옆이 불재 버스정류장이니 낙안읍성이나 다른 곳으로 가실 분은 버스를 기다리시면 됩니다만, 버스 배차간격이 긴 관계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는 게 더 빠르실 겁니다.

불재


불재는 순천에서 낙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개인데, 한자로 화현(火峴)이라 씁니다. 불을 화(火)로, 재를 현(峴)으로 한 표기인데. 불재의 명칭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득한 옛날 한 봇짐장수가 낙안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고개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만류하는 주민의 말을 뿌리치고 혼자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청년 봇짐장수는 열심히 고갯마루를 향했다. 중턱을 넘어갈 때 별안간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파랗게 번쩍이는 번갯불만이 시야를 밝혀줄 뿐이었다. 등에 진 약제가 젖을까봐 비를 피할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런데 번갯불 틈으로 희미하게 작은 초가가 보였다.

"옳다. 됐구나!"

하고 그 초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다시 빗줄기가 거칠어지더니 우박으로 변해 따닥따닥 하고 콩볶는 소리가 났다. 초가로 급히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불빛이 비쳤는데 막상 들어서니 지붕에서 비가 새는 빈집이다. 청년 봇짐장수는 봇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살폈다. 상여 막이었다. 상여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고 짚신과 꼬투리가 번갯불에 언뜻 보였다. 무섬증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기왕 들어온 터라 비가 덜 새는 곳을 찾았다. 거기는 관을 넣어 놓은 상여가 있는 곳이었다.

우선 봇짐과 약제를 상여 속에 넣었다. 무서웠다. 주민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라 되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청년은 관 속으로 몸을 들이밀고 그 밑을 들여다보았다. 뭉클하고 무슨 물체가 잡혔다.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아니 송장이 아닌가?"

그때다. 그 물체가 벌떡 일어나 기괴한 웃음을 짓고 덤벼들었다.

"히히히, 이놈이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들어와 무례한 행동을 하느냐? 죽어봐라! 이놈아!"

하고 보니 송장이 아니라 귀신이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손톱은 송곳같이 뾰족하고 두 눈은 깊숙이 들어가 해골 같고 찢어진 치마에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청년은 정신을 바짝 차려 귀신을 향해 크게 외쳤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귀신이면 물러가고, 사람이면 무릎을 꿇어 빌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그래도 그 정체 모를 물체는 기묘한 웃음을 짓고,

“이 애송이 놈, 너를 잡아먹겠다." 라며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 혀를 날름거리며 손톱으로 얼굴을 마구 후볐다.

청년은 그 물체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았다. 청년은 오던 길로 뛰었다. 비가 멎고 달빛이 구름 사이로 비추고 사방이 훤했다. 청년은 소나무 밑에 주저앉았다. 그때다. 어느 틈에 따라왔는지 귀신이 등 뒤에서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이놈! 너를 잡아먹겠다!"

하고 얼굴을 할퀴었다. 다시 도망쳤다. 정신없이 달렸다. 박달나무가 있는 곳에 이르자 젊은 여인이 홀로 앉아서 끼륵끼륵 울고 있었다.

"저것도 귀신이다!"

하고 도망치려다 가만 살펴보니 귀신같지 않았다. 여인은 ‘으흐흐흐’ 웃었다. 머리를 헤 풀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미친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여인이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청년은 여인의 뒤를 따랐다. 세 갈래 길에 들어서더니 좁은 길을 택해 후미진 쪽으로 향했다. 청년은 계속 따랐다.

여인이 묘에 앉았다. 청년은 숨어서 여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아니!"

여인은 두 손으로 마구 묘를 파헤치는 것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얼마 뒤 널이 보였다. 청년은 가슴이 섬뜩했다. 여인은 시체를 꺼내고 기괴한 웃음을 짓고 춤을 덩실덩실 추고는 관에서 물을 퍼 얼굴에 바르며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며 히죽거렸다.

이번에는 시체를 안고 다른 묘로 가다가 바위 위에 시체를 눕히고 칼로 두 눈을 후벼 파 해골을 꺼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치마폭에 해골을 감싸고 또 '히히히' 웃으며 뛰어갔다. 청년은 계속 뒤따라갔다. 어느 바위에 이르러 여인이 사라져버렸다.

그때였다. 천둥이 치면서 그 바위에 벼락이 떨어졌다. 청년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날이 밝았다. 청년은 벌떡 일어났다. 바로 눈앞에 흰 여우 두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이다. 청년은 "그 여인이 여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벼락이 떨어진 곳에 큰 굴이 생겼고, 여우는 그 벼락에 맞아 죽었다. 청년은 굴 안으로 들어갔다. 방처럼 아담하고, 굴 바닥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그 물을 마시자 정신이 상쾌했다. 그 뒤로는 그 고개에서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굴을 굴재굴이라 부르고 재를 불재라고 불렀다.

또한 명칭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옛날 처사 한 분이 처사굴(구능수)에서 득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마침 낙안에서 승평(昇平 순천)을 가기 위해 군수가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고개에 다다르자 처사에게 군수가 지나가니 내려 와서 인사를 올리도록 영을 내렸다. 처사는 아예 못들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군수는 다음날 나졸들을 시켜 처사를 잡아다가 군수 앞에 대령 시켰다.

군수가 처사에게 무엄하지 않았는가 하고 크게 호통을 치자 처사는 내가 군수에게 인사할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공부하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반하였다. 군수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냥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처사는 돌아가면서 마침 불이 없으니 온 김에 밥 지을 불씨나 좀 얻어 가겠다고 하며 불씨를 줄 것을 요청하자 군수는 처사를 골려 줄 심산으로 말 꼬리로 만든 밀가루 치는 체에다 불씨를 담아 가도록 하였다. 군수는 처사가 불씨를 어떻게 가지고 가나 뒤따라 가보니 아무런 탈 없이 체에는 숯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한다.

이에 군수는 처사의 능력이 신기에 가까우므로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서는 자기의 경솔함을 깨닫고 이 고개를 불재(火峙)라고 부르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금전산을 오르실 분은 불재 버스정류장에서 올라 정상을 거쳐 금강암 입구로 내려가는 코스가 좋을 듯 합니다. 정상에서 불재로 가는 길에 바위가 많아 내려가기에는 많이 힘들고 위험합니다. 또한 금강암 입구에는 낙안온천이 있어 산행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을 겁니다.(참고로 낙안온천은 조금 큰 목욕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하튼 코스 선택의 아쉬움을 안고 저희는 다시 낙안읍성으로 향했습니다.



분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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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시마리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가용~
    생각지도 못했던 전설들이 참 많은 것 같네요.
    순천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꽤 기쁘다는.... 헤헤

    2008/10/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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