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동네 여고 2학년 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전교 3등이라는 이 아이는 최진실처럼 압박붕대로 목을 매달았다. 이 아이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더 끔찍하다. 지난 중간고사에서 서술형 주관식 문제 하나를 쓰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아이의 죽음도 베르테르 효과 중의 하나라고 불릴까? 요즘 자살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 어떤 이유가 그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았는지보다는, 온통 자살 방법에 대한 이야기 뿐인 듯 하다. 언론의 관심은 과연 압박붕대를 사용했는가, 최진실과 같은 방법인가, 하는 데에 쏠려있다. 모든 자살이 깔대기처럼 베르테르 효과로 정리되고 있다. 수많은 사연들과 슬픔은 이 단어 하나로 묻혔다.
베르테르 효과의 진원지라는 최진실의 죽음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녀를 우울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것은 안재환 관련 루머 이전부터 줄곧 존재했던 이혼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회의 따돌림이었다. 퍼렇게 멍든 그녀의 사진을 놓고 '맞을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시선을 보냈던 사회의 가부장적 동맹이 3000여개의 댓글을 모두 읽은 그녀를 기절하게 만들었다. 술과 신경안정제의 도움이라도 있었으니 그 차디찬 편견 앞에 설 수 있었을테다. 사채설은 위태위태하게 버텨내던 그녀에게 가해진 마지막 폭력이지 결코 근원적 폭력은 아니었다.
논란이 되는 '최진실법' 따위로 인터넷 댓글을 차단하거나 임의적으로 판단해서 처벌하겠다는 이들은 명백히 가시화된 미시폭력들에만 관심을 쏟는 듯 하다. 그러나 그 저의도 의심스러운 이 편협한 주체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이 사실 근원적 폭력을 만들어내는 메타악플러이다. 몇몇 악플러들이 방에 틀어박혀 특정인에 대한 악플이나 다는 수준이라면, 이들은 공개적인 힘을 가지고 사회의 어떤 집단들에 대해 근원적인 폄하를 지속하고 있다. '좌빨'이니 '전라디안'이니 '꼴페미'니 하는 쓰레기 말들은 이 메타악플러가 기획해놓은 지형도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전투를 치루는 병사들일 뿐이다.
한 사회의 권력을 압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공개적으로 어떤 집단을 괴롭히는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 생산적인 비판 따위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자존감을 상실한 학생들의 절규를 단지 공부하기 싫은 철부지의 투정으로 여기거나, 너무도 당연하게 이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하는 기사들을 써대는 언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정치세력, 이 모두가 악플의 카르텔을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대화없는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죄없는 베르테르 탓으로 돌린다고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진정 죽음을 걱정한다면, 그리고 진심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근거없는 주범타령은 집어치우고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보수라는 이름답게 예의와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보수정치세력은, 고인을 욕되게 할 '최진실법' 같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당장 메타악플러의 행위를 관리, 감독할 법을 강화해야 한다.그것이 죽어가는 아이들과 여성으로 살고자 했던 고인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