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소녀 환상] 분서 항의에 대한 두 줄 요약 설명
다시 만나요, 광화문에서
나는 80년대 초반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지역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오늘 이오공감에 뜬 두 글을 읽으며, 나는 90년대를 떠올렸다.
좋은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어도 10대의 나에게는 그랬다. 정화여고의 연보라색 스웨터를 입은 여고생 언니들을 보며 두근대던 국민학교 시절이라던가 이은혜의 JTA+와 이미라의 인어 공주를 위하여와 함께 자란 어린 시절. 물을 돈 주고 사 마신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고 오락실과 만화방, 그리고 잡지. 요즘의 인터넷 대신 우리들에겐 전화 사서함과 영상회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일본 문화와 만화는 검열 대상이자 지탄의 대상이였다. 학부모회와 YMCA 아줌마들은 모여서 만화를 검열하고, 영화의 몇 몇 씬을 자르고, 만화책을 불태웠다. 90년대 만화 모임 연대가 집회를 하며 보낸 여름날을 기억한다. 지금과는 분위가가 다르던 SICAF와 ACA, 개토, 블랙체리전을 떠올린다. 요즘의 일본 아이돌이며 일본 드라마가 공공연하게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비쥬얼 락이 대세던 90년대 중반, 나는 반 친구에게 일본음악을 듣는다는 이유로 매국노란 소릴 들었던 적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길거리에서나 편의점 안에서 일본 음악을 들으면 깜짝 깜짝 놀란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이였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 왔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친일파 숙청이라던가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은 한국은 그저 과거와 현재의 미묘한 상황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법대로 처벌하자면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사람이 서울 금싸라기 땅들의 소유주로 잘 살고 있는 나라. 부정부패가 남아있는 땅.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교육청이 청렴도 꼴찌, 부정 부패도 일 위를 자랑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나라도 국민도 혼란스럽다. 에구에구.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보고 주변을 돌아본다. 혼란스럽다. 분명 잘 살게 되긴 했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은 힘든 현실에 구겨져 있고, 아이들은 어깨가 무겁다. 어떤 나라를 비교하면 우리가 열라 잘 사는 것 같은데 어떤 곳과 비교하면 살아가는 기준이나 복지 정책, 일터의 환경이 너무 떨어지는 것도 같다. 갈팡질팡, 허둥지둥.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는데, 달리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다치고 잃어 버리는 줄도 모르고 달려만 간다.
...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경제력들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이리 말하면 나이 있어뵈지만 나도 아직은 20대-_-;) 모르는 것 같다. 아니면 잊고 있거나.
한 명이 한 권을 불태워도 술렁거리는 세상. 여러 명이 수백권의 만화책을 불태우고, 만화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오덕 오덕 거리며 불법 다운로드 받은 게임들과 일본 동인지, TV 쇼 프로그램이 가득한 한국의 웹 사이트들. 일본문화 개방 전까지 일본의 대중문화를 볼 수 있는 입구라고는, 팬클럽끼리 만들어 제작한 영상회 비디오 테이프나 혹은 친구 오빠가 녹음해 준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 혹은 GMV나 채널 V, 혹은 NHK나 수입 서적 전문점이 전부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들 잊은 것 같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도 있다. 잊었다 말하면 슬퍼질 것 같다. 잊혀졌다고 결론 지으면 안 될 것 같다.
90년대에 붕괴된 성수대교. 무너져내린 다리처럼, 지금의 우리와 과거의 우리를 잇는 허브 역할을 해주는 건 저렇게 부숴져서 남아있지 않은 느낌..
100℃ - 최규석 (만화로 보는 6월 항쟁)씨의 최근 인터뷰 내용을 덧붙인다.
(전략)
가만히 보면 87년 6월 항쟁에 대해 찬양하고 칭찬할 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값어치는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도 달라진 게 없다면 달고 다니는 꽃밖에 안 되는 것이다.
(후략)
-최규석 08 우리만화 5/6월호 인터뷰 중 발췌-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3&title_down_code=003&area_code_num=113&article_num=9461
우리는 우리가 달고 다니는 꽃의 값어치도 모를 뿐더러, 그것을 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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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호> 현대판 분서갱유: 만화를 불사르는 문화의 시대 2000년 08월 02일
0 세상보기가 드디어 컴 앞에 앉았습니다. 전신마취의 후유증일까요? 머리가 도무지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서 고민입니다. 하지만, 의사아찌들과 피지컬 쎄러피스트(물리치료사), 그리고 여러분의 위로메일 덕분에 이제 목발을 의지해 걸을 만합니다. 좀 늦었지요, 이제 열심히 쓸께요.
0 문화적 자신감을 가져도 될텐데,,,,
국내외 석학들의 책에는 하나같이 21세기는 지식과 문화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대라는 머리말을 적습니다. 그러나, 2000년 7월 18일, 병상에서 만난 조석간 신문에선 우리사회에 문화의 향기가 없음을 전하고 있더군요. '천국의 신화'를 그린 불혹의 만화가 이현세, 어린 시절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를 그려낸 그가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내야한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원시시대의 인간상을 너무나 폭력적이고 야하게 묘사한 죄를 지었다고 하더군요.
청소년 보호법 위반, 사건기자로 새벽공기를 가르면서 경찰서를 누비던 때, 미성년자를 고용하거나 그들에게 술을 판 단란주점 업주나 호프집 주인, 그리고 이른바 포주들에게 붙여지던 죄명입니다. 한번은 고작 맥주 1500cc와 돈까스 안주 하나를 판 작은 주점 아줌마에게 청소년 보호법을 위반을 적용한 젊은 형사가 난갑해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돈 만원 어치 팔아놓고 경찰서를 드나드는 모습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게죠.
이번 판결은 이런 비슷한 자괴감을 느끼게 합니다. 같은 신문의 영화포스터엔 다이노소어 같은 이것보다 한 참 이전의 동물들이 생사고락을 묘사한 에니메이션이 관객을 끌어모으는데, 우린 원시시대를 묘사한 만화책이나 불사르고 있으니.... 그것도 전체도 아닌 일부 컷의 내용을 폭력과 음란이라는 객관적이기 힘든 잣대로 저울질 하는 형상이란.....만화책을 판금하고 만화가를 처벌하는 것을 분서갱유에 비유하기 조차 우습군요.
현대판 만화의 분서갱유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지난 1996년,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음란폭력성 조장매체대책 시민단체협의회'(이하 음대협)가 스포츠신문을 상대로 폭력 및 선정성을 문제 삼아 연재만화에 대한 연재중단 및 사과문 게재 등의 시정을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화라는 장르가 마광수, 장정일의 소설처럼 법의 잣대로 측정되기 시작해 스포츠 신문사 편집책임자들과 만화가들이 무시무시한 기소를 당하고 했었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 7월 18일, 우리세대에겐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더 잘 기억되는 '천국의 신화'의 작가 이현세에게 3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진 것이죠. 문화의 시대 한축을 담당할 만화의 수난이 표면화 됐습니다.
21세기를 책임질 우리 검찰이 내린 결론은 '천국의 신화는 신화를 가장한 포르노일 뿐이다', 그래서 또 다시 흔하디 흔한 예술과 외설, 그리고 표현의 자유란 말이 수면위로 올려 놓았습니다, 문화적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것인지 ? 마늘과 쑥으로 기적을 만든 곰의 후예들이 나라라는 것이 생기기도 훨씬 전에, 성경으로 치면 아담과 이브가 몸을 가리지않고 에덴동산을 뛰놀던 시기를 너무 가혹하게 표현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혹한 폭력과 동물적인 성교묘사..... 물론 법의 테두리를 넘어선다고 판단할 여지는 있지만 한 번쯤 재고해볼 여지도 분명히 있었을텐데. 언어와 사회적 체계마저도 갖추어 지지도 못한 원시사회, 거의 나체로 동물에 가까운 생존사회에서 인간의 본능인 생존유지의 본능(식욕), 종족보존의 본능(성욕)을 그려낸 부분을 음란과 폭력의 지극히 이성적인 바운더리로 묶어 처벌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검찰 스스로 우리의 문화적 포용력을 지극히 낮게 표현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적 콘텐츠는 그것이 만화든, 영화든 간에 작가가 전달하려는 총체적 메시지로 감상하는 것이 기본 아닐까요, 구태여 메세지는 버리고 단절된 이미지 한컷 한컷에 칼을 댄다는 자체는 본질적인 원시현상을 애써 디즈니의 아름다운 에니메이션으로만 포장해 왜곡된 꿈과 유치한 발상한 발상만을 심어주지는 않을까요. 우리에겐 분명이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던, 동물적인 야성이 앞서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 큰 문명을 일구어낸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서 올챙이적 역사를 개구리만의 역사로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을 우리의 청소년의 실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들은 분명한 실체로 우리사회의 성원으로 우리사회의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고 향유하며, 어떤 것들은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나 우리 부모세대의 잣대로 측정해선 곤란하다느 말을 하고 싶군요. 이들은 이미 많은 부문에 걸쳐 메니아로서 이 사회의 곳곳을 장악하고 있고, 뛰어난 적응성으로 벌써 사이버 공간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있는 형국이니까요. 물론, 모두다 성숙한 인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그 이전세대 처럼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소양과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부모나 사회가 입으로 씹어서 입에 넣어 줘야할 만큼 나약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 청소년들이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쯤을 보고 미쳐 날뛰었다면, 인터넷과 비디오방, 성인물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기성세대에겐 못마땅할 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사고체계와 행동양식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멀티코뮤니케이션 커뮤너티. 인터넷을 포함한 컴퓨터와 통신장비를 활용한 온라인문화와 그 밖의 오프라인문화를 활용한 사고와 행동체계. 특히 온라인 문화 창구엔 그들이 즐기는 게임말고도, 훨씬 더 폭력적이고 몇 백배 더 음란한 세상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경험하고 그들 나름의 '룰'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 뛰어들어 원조교체와 가진 음란물로 꼬드기는 것은 바로 우리 성인들 아닐까요. 검찰은 이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고, 사법부는 어떤 판단을 내리셨나요.
그리고는 뻔뻔하게, 만화라는 인쇄매체물이 21세기에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만큼, 문화의 시대에 만화는 창작 표현물인 동시에 산업생산물인 만큼 사법부가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청소년을 대신해 문화상품에 대한 유해성을 판단해달라고 신문고를 두드리는 모습은 왠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모자라 문화상품이 지닌 수 많은 다의적 해석을 무시한 채 사법부의 판단을 금과옥조처럼 강조한다면, 예전의 검열과 무엇이 다르고 그렇게 부르짖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이 모두가 우리가 고민할 영역이지 청소년들을 곁다리로 세워 우리의 도덕과 사고를 강요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칼날은 텔레비전에도 전이되고 있습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텔레비전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장관직을 걸고 사리지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프로그램 곳곳에 여름이라는 계절적 이유로 노출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카메라에 잡힌 세상이 우리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입니다. 짧은 나시에 핫펜츠, 한강고수부지의 비키니족들, 농익은 밤문화, 그리고 도심의 폭주족....... 존재하는 사실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지운다고, 현실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텐데. 이것을 유행으로 봐줄 아량은 더위에 사라진 듯 하군요.
문화상품에 대한 과도한 제약을 두고, 그 제약을 확대해 간다면, 결국, 문화의 세기를 앞에 두고도 청소년만을 곁다리로 세워 문화적 자신감을 스스로 접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주변에서 바라본 환경이 검찰과 사법부의 우려만큼 어긋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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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아이 | 2008/09/02 00:28 | etc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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