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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 ![]() 고병권 지음/그린비 |
우리는 ‘대표’(代表, representative)라는 말을 싫어 한다. 누가 누군가를 대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표해서도 안 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연구실의 모든 모임들은 자신을 ‘표현’할 뿐이고, 그것들이 모여 다시 연구실을 ‘표현’한다. 모임과 활용을 조정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보다 좋은 눈으로 연구실 곳곳의 문제들을 잘 발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를 대신하거나 어떤 활동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사실 ‘대표’라는 말은 그 자체로 권력 냄새가 난다. 보통 우리는 외국어 ‘representation’을 표상(철학), 재현(예술), 대의(정치) 등으로 옮긴다. 이 말들은 모두 실존에 개입하는 어떤 이중작용을 가리키고 있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현존하는 것’(present)을 ‘다시(re-) 나타낸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사과’라고 부를 때, 그 사물은 그 자체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에 의해 ‘사과’라는 말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권력이 작동할 여지가 여기서 생긴다. 실존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재현된 것이라 할 때, 즉 그 자체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대신 나타난 것이라 할 때, 이 재현 과정에 권력이 개입한다.
우리 정치 이야기를 하면 쉬울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뜻을 대신하겠다는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국민의 심부름꾼, 머슴임을 자임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머슴’이 되고 싶어 안달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실제로는 그들이 ‘머슴’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말투를 흉내내자면 이렇다. ‘실존하는 것은 표상된 것’이라는 말을 뒤집으면 ‘표상되지 않으면 실존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즉 국회의원들이 대의하지 않은 국민의 뜻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런 게 권력이다. 결국 의원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대의라는 게 되는 것이다.
6쪽 / 머릿말: 고추장의 ‘고추장’ 이야기
오늘 부시가 왔다. 뉴스를 보니 저녁 6시 30분 정도에 성남 공항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남산 순환로는 다섯시 무렵부터 통제되었다. 하얏트 호텔에 부시가 머물기 때문이라나?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경찰들은 부산을 떨었다. 2008년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은 부시를 맞이하기 위해 요란이다.
이명박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인기투표 같은 ‘선거’나,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이 하는 짓거리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의미 있는 것은 어쨌건 스스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서투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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