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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을 한 군데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두 소녀, 언니와 동생, 그러니까 루스와 루실이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그들은 외로웠으므로 아주 늦게까지, 어둠이 꽁꽁 언 호수 위에 소리 없이 내려 앉을 때까지 빙글빙글 스케이트를 탔다. 같이 타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두 사람만 남을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다. 루스와 루실이 어둠이 내려앉은 호수 위에서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하는 생각들. 이건 정말이지 따'듯'한 문장이다.
그해 겨울, 루실과 나는 스케이트를 타고 뒤로 가는 법과 한 발로 도는 법을 부지런히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스케이트 타기와 적막함과 사람을 마비시키는 기분 좋은 공기에 완전히 취한 나머지 맨 마지막으로 호수를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개들은 아직 사람들이 다 가버리지 않은 게 몹시 기쁜지 요란하게 날뛰면서 덤벼들었다. 그놈들이 우리 장갑을 물어 뜯으면서 우리 주위를 빙빙 도는 통에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핑거본을 향해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판을 건너오다가 문득 꿈결에 나타난 것처럼 어둠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음을 깨닫곤 하였다. 그럴 때면 마을에서 따듯하게 빛나는 노오란 불빛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위안처럼 느껴졌는데, 불빛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만일 핑거본의 모든 집들이 모조리 불이 꺼진 채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면, 서서히 잦아드는 깜부기불처럼 그 장면이 우리 오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뒤를 이어 지독한 어둠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으리라. (p.49-50)
<하우스키핑>은 외로움에 관한 책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이 책에는 온갖 외로움들이 나열되어 있다. 외로움이란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커피우유의 종류처럼 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만큼 비슷비슷한 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곳에는 열 개의 외로움이 있다. 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 곳에는 백 개의 외로움이 있다. 외롭다는 것, 우리가 모두 한 가지씩 각자의 외로움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외로움에 관한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건 스케이트로 뒤로 가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이고 한 발로 도는 법을 연습해야하는 것이다. 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을 얼굴로 맞기 좋아하는 사람이 더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안다. 불빛 하나가 위안이 된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나는 안다.
핑거본의 호수 아래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잠겨져 있다. 새까만 밤, 기차는 소리없이 추락했고 사람들은 호수 아래에서 잠들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평온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소를 짓고 있었을 거라고. 루스와 루실을 할머니집에 데려다 준 엄마도 호수 아래로 떨어졌다. 경쾌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엄마는 웃고 있었을 거다. 눈물이 얼굴 위로 쏟아지는 채로. 외로움이 적은 사람은 호수의 도시, 겨울의 도시 핑거본을 견디지 못했다. 그들은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을, 파묻혀버릴지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을 무서워했다. 그들은 핑거본을 떠났다. 외로움이 아주 많은 사람도 그랬다. 그들도 기차가 매일 몇 번씩이나 소리없이 지나가는 호수 아래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핑거본에 영원히 머무르거나, 영원히 떠나거나. 당연하게도 핑거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
호수 아래의 세상을 생각해봤다. 호수 아래에도 외로운 사람들의 세상이 있다. 겨울이 시작되면, 호수물이 꽁꽁 얼기 시작하면 살을 에는 차가운 물에 얼굴이 바짝 닿는 사람들. 수면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이 위로가 된다며 속삭일 사람들. 봄이 오고 빙판이 녹기 시작하면 그들은 호수 바닥에서 축제를 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갔어요.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오고 있답니다. 댄스 파티. 아주 천천히 물살에 몸을 맡기는 춤을 추는. 상상해보면 그건 왠지 좀 슬픈 동작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면 호수 위의 이들에게까지 그 동작이, 그 기운이 전달될 것이다. 출렁이는 호수 밑바닥에 이는 흙탕물의 냄새까지. 핑거본은 '바람 속에서도 호수 냄새가 나고, 마시는 물에서도 호수 맛이 느껴지는' 곳이니까.
이 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읽어나가면 겨울을 만날 수 있다. 무더운 여름날, 눈이 지독하게 많이 내리는 호수의 도시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당장 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많이도 내린다. 외로움도 많이도 내린다. 이 호수의 도시에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호수 아래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나 걱정해야 한다. (호수 아래에는 이미 많은 외로움이 있다) 결국 두 여자는 호수 아래로 떨어지는 대신 핑거본을 떠났다. 그리고 덕분에 가끔 자신의 외로움을 어두운 창가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생겼다.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낮 말고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안만 훤히 내비치는 밤의 창가에서 자신을 꼭 닮은 서늘하고도 따듯한 외로움을 발견하는 사람. 이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니까. 신기하게도 그런데도 자꾸만 따뜻해지는 이야기니까.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핑거본의 호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살을 에는 적막한 사람을 마비시키는 차가운 공기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또 다른 키핑.
두 사람이 자러 가면 나와 루실은 침대에서 일어나 누비이불을 덮어쓴 채 창가에 앉아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p.46)
나는 우리 셋이 문을 전부 활짝 열어 놓은 기다란 화물차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활동 사진에 나오는 장면처럼 움직였다 멈췄다 하면서 명멸하는 영상을 보여 주는, 수도 없이 많고 빠르고 똑같이 생긴 화물차들 말이다. (p.70)
이모도 말했듯이 누군가를 묘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치 밤에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기억이란 본래 분해되고 고립되고 제멋대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루실과 나는 어두운 저녁에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기차는 모든 유리창에 환하게 불을 밝힌 채 푸르스름한 눈 사이로 느릿느릿 기어갔는데, 안은 무언가를 먹거나 논쟁을 벌이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겨울날의 오후 5시 30분은 바깥 풍경이 모조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기차 안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면 새까만 유리창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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