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7 06:24

[옛 포스트 리뷰XXVI]동네 한바퀴

2007 COMO says


나에겐 여러 곳의 고향이 있다. 태어난 곳은 전주이고, 조상의 묘가 있는 곳은 부안이며, 일생 중 가장 오랜 기간 살아오고 있는 곳(그래봤자 4~5년에 불과하지만) 은 서울이다.

지 독한 역마살 덕에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긴 했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속의 고향은 따로 있다. 그야말로 '고향'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 구례이다. 홍난파 선생의 '고향의 봄'이란 동요를 들으면 언제나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겨우 일년 남짓 살았던 이곳이었다. 그만큼 농촌 풍경이 여전한 곳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원래는 일본 여행을 꿈꿨다. 언젠가 밝힌 바와 같이 나는 일본 여행에서 큰 즐거움을 얻은 덕에 지역을 달리해서 또 한번 방일을 도모했다. 그게 여의치 않자 나는 이곳을 택했다. 부모님이 이곳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 꼴로 들르는 곳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곳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겨우 사흘 정도 '버티고' 서울로 도망치듯 돌아가는 나에게 이곳은 지루하고 질릴만큼 조용한 곳일 뿐이었다.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는 곳, 새벽 잠을 장닭이 깨워주는 곳, 흙담에 담쟁이가 아직 그대로인 곳. 누구나 상상할 이 곳을 이제야 한번 둘러보았다.








시골이면 어디든 쉽게 볼 수 있는 일반 음식점. 간판의 화려한 색과 독특한 폰트가 끌려서 찍었다. 언제나 소주 한잔과 해장국을 먹는 시골 아저씨들로 시끌벅적하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다 한잔 따라줘가면서.






서울에 와서 새삼 놀란 것은, 경운기를 실제 못 봤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이다.





내 가 국민학교(나는 국민학교 마지막 세대이다.)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구례 북 초등학교'이다. 지금은 어느정도 새단장을 해서 깨끗해 졌다고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맨 오른쪽 칸의 2층에 교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체육관도 생기고 급식소도 생겨서 좋아졌더군. 전에는 주변이 모두 논이었던 기억이 난다.






예전 학교라면 어디든 있었던 충무공상 괴담. 불행히도 그런 이야기는 기억이 안나고, 대체 손가락으로 어딜 가리키는 지 알 수가 없다.





" 너 일로와봐 " 알고보니 교문을 향한 거였군. 꼭 삥뜯는 양아치 같은 포즈잖아. 이때쯤 풍겨오는 고향의 냄새. 어디서 똥 비료를 쓰나?




뭔 가 '가을 동화'에서 준서와 은서가 샤방한 로맨스를 할 것 같은 이 곳은 분위기와 다르게 '숙직실'이란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집 없는 총각 선생들이나 경비아저씨가 묵을만 한데, 분위기는 은근히 괜찮군. (물론 실제론 매우 지저.....분)





요즘엔 평범할 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부터 급식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되보이기도 한다. 도시락 까먹는 것과 급식을 어떻게 비교하겠나.. 포크 달린 숟가락의 위력은 도시락에서 빛을 발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걸?)





학 교를 벗어났다. 이제 조금 눈치를 챘겠지? 이 포스트는 구례군 구례읍 중에서도 내가 잘 다니던 길만을 따라 다닌 여행기이다. (어디가서 여행기라 말하기도 쑥쓰럽다.) 평범한 골목인데, 나에겐 등교길이었다. 물이 흘러내리던 집은 과거에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재왕이가 살던 집이다.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멀리 보이는 첨탑은 내가 세례를 받았던 성당이다. 지금은 그때만큼 순수한 신앙심이 추호도 없다. 저곳도 많은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아름답게 꾸며놨다. 벽돌 한장 쯤은 내 봉헌금도 들어가 있을 거다.




겨 우 십 오륙년 지났을 뿐인데... 나는 이곳이 없어졌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곳은 전에 조그만 논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서울 숙모가 사다준 '비싸보이는' 신발 주머니 안의 신발을 빠뜨렸고, 개구리 알이랑 올챙이를 잡겠다고 설치던 곳이다. 재왕이와 하나를 만나고 학교를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곳이다. 지금은 완전히 메워져서 쓸데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이곳이 김하나의 집이었다. 당시로선 꽤 고급 양옥이었는데, 어릴 때 자주 놀러갔던 집이기도 했다. 앞뜰이 예쁜 정원으로 꾸며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를 가기 위한 샛길. 역시 오른쪽은 메워져버린 논이다. 멀리 보이는 꼬마는 사진 찍는 나를 보고 팬티 차림에 포즈를 취한다.





이 곳에 살던 어린 시절, 나는 꽤 똘똘했고 잘난 맛에 사는 아이였다. 가장 친한 친구로는 재왕이와 하나, 윤정이 누나가 있었고, 돌맹이를 패대기 쳐 빛나는 광물이나 보석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했다. 번쩍 거리는 돌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그 순진한 시절 어떻게 지리산에서 주운 하얗고 예쁜 돌을 몰래 숨겨올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보건소 시절이기도 해서 병원에 놀러가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내가 어릴 때에도 있었음 직한 해병 전우회 사무실. 나는 이미 호남 향우회, 고대 교우회를 갖춘 준비된 3대 '꼴통' 집단의 예비 회원이기도 하다. 이런 직함만 있으면 해외에 나가도 문제 없을 텐데... 해병대라...




로 얄 빌라 뒤에는 바로 뒷동산이 있다. 구례 사는 사람들의 뒷동산이야 지리산(?)이지만, 사실상 만만한 건 이 봉성산이다. 어릴 적부터 봉산이라고만 불러서 봉성산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그렇단다. 언제 비석까지 세워뒀네. 봉성산 공원이라..




여 름엔 산길이지만 겨울이 되면 빙판으로 변한다. 이곳은 어린 시절 추억의 비료푸대 썰매장이었고, 극악의 코스 덕에 위험한 상황도 몇 번 겪었다. 이곳의 초급 코스에서 시작되어 산 입구의 가파른 계단인 중급 코스, 그리고 경사지고 차다니는 도로까지 이어지는 죽음의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멈추지 않으면 그대로 골로 갈 수도 있다.

비료푸대를 어떻게 탔나를 고민해 보니, 그냥 푸대만으론 훌륭한 썰매를 만들 수 없다. 신문지를 깔아 엉덩이를 보호하고, 비료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타면 왠만한 눈썰매장의 그것보다 스릴이 넘친다. 비료푸대를 구할 수 없으면 비닐 봉지를 이용했는데, 이 경우 거의 일회용이었다.





동네 풍경 한번 찍어주고. 역시 제일 높은 건물은 교회와 읍내의 유일한 주상복합인 송원마트뿐이다. 안 어울리게 거대한 체육관도 보이네.







순간 포착 아니죠. 거미줄 맞습니다. 공중에 매달린 잎파리가 신기한 자태로 걸려 있길래 한방 찍었다. 연출 같아서 조금 쌩뚱맞은 거 나도 안다.





밥 먹을 시간이 다 돼서 돼지고기 사들고 집에 가야 한다. 산은 다음에 오르기로 하고, 근처의 국궁터에 왔다. 여기서 저기까지 전통 활로 맞추는 건데, 아저씨들의 사랑방이자 꽤 고급 취미를 즐기는 곳 같았다. 이곳을 지키는 경비견(?)이 하도 미친듯이 짖어대서 얼른 찍고 나왔다.




꽤 정갈해 보이는 사무실이다. 뭔가 그럴듯 한걸?




이 자식.... 노려보면.... 무섭지....

나 도둑 아냐. 그만 좀 짖어라.





폭염 주의보도 발령되었는데, 두 시꺼먼 종자들이 나란히 앉아 세상만사를 논하는 중이다. 무슨 부부처럼 행동을 같이 한다.





원 래 이곳은 내가 다니던 미술학원이었는데... 어느새 보습학원으로 탈바꿈 되었다. 손재주 없는 나를 위해 방학숙제로 낼 그림을 대신 그리다 시피 하던 선생이 떠오른다. 방학 숙제 안했다고 불같이 화내던 울 아버지에게 선생이 그려준 '그림 숙제'는 그렸다며 변명하던 우스운 시츄에이션도 기억나는 군. 아마 꽃이랑 사과 그려진 정물화였지? 다시 그리라면... 졸라맨이 생각 날거다.




이 놈의 고추 말리는 건 지천에 깔려있다. 그나마 중국산이 들어온대서 전보다 많이 줄었던데.. 간만에 냄새 맡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 그런데 고추잠자리는 정말 고추 먹고 빨개진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참... 성의 없게도 썼다. 구례 여중의 교훈이라는데... 정말 딱 '성실'이 뭐냐..





가 상 메모리가 부족하다네... 사진을 편집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올렸더니 이 모양이다. 오늘 못 오른 봉성산 정상은 불과 400m남짓한 만만한 산이지만 나름 공원으로 잘 꾸며진 곳이다. 등산로로선 괜찮다고 할까? 내일 지리산 불일폭포 등반을 할 생각이다. 이곳을 갔다 온 후 집에 돌아가기 전 봉성산도 재차 오를 참이다.


이렇게 줄줄히 읊다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술이나 한잔 하면서 옛날 얘기로 낄낄거리고 싶기도 한데.


축구 한다네... 그거나 보러 가야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2

Trackback : http://como.tistory.com/trackback/119 관련글 쓰기

  1. BlogIcon 웅크린 감자 2008/10/28 14:58 address edit & del reply

    유달리 날씬하신 충무공 동상이 눈에 띄는 군요. 제가 다닌 학교의 충무공 동상도 날씬하셨죠. 아직도 기억나는 동상에 얽힌 괴담이 있는데, 세벽4시만 되면 충무공 동상과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싸움을 벌린다는 괴담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단군 동상이 본다고 했습니다.^^

  2. 2008/11/10 20:33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