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집

혜강집
혜강 지음, 한흥섭 옮김/소명출판

지은이 혜강(嵇康, 223~262) 위(魏)나라에서 태어났다. 수려한 용모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흠모하여 스승으로 받들고자 했다. 22세에 <금부>와 <성무애락론>을 지었는데, 이 <성무애락론>과 그가 후에 지은 <양생론>은 당시 청담의 주요 주제가 된다. 혜강은 이렇듯 빼어난 학식과 당당한 풍채로 말미암아 비록 한미한 집안 출신이지만, 조조 황실의 사위가 되어 중산대부라는 관직을 받는다. 그러나 곧이어 발생한 사마씨의 정변으로 인해 이에서 물러나 은거하면서, 그들의 허위적 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 의해 나이 사십에 거리에서 참수당한다.

- 책날개에서

혜강집이라고 제목을 봤을 때는 혜강(惠崗) 최한기의 문집이겠거니 생각했다. ㅡㅡ; 웬걸. 위진시대의 죽림칠현 가운데 혜강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의 글을 모은 책이 바로 이 혜강집이다. 위진 현학玄學에 대해 알아보자고 주역세미나에서 읽기로 했다. 첫 머리는 시만 있는데 읽을만 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아마 암호문 같은 글이지만 고전을 익숙하게 알고 있으면 한결 읽기 쉽다. 특히 장자와 노자에 밝아야 한다.

위나라, 삼국시대 조조의 위魏에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논어집해>를 지은 하안이라던가 <주역주>를 단 왕필, 거기다 좀 이후 사람이긴 하지만 혜강까지 생각하면 위나라는 지식인의 보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써x랄 비스타 같으니라구!!!

연구실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끔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를 손봐줘야 하는 일이 생긴다. 지금은 기초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많아진 덕에 그나마 일이 줄었지만 여전히 일은 터지기 마련이다.

오늘 문제를 일으킨 녀석은 삼보 에버라텍… 에 탑재된 윈도우 비스타였다! 연구실 식구들이 대부분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구식 노트북인 경우가 많아 비스타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올해 여름에 구입한 새 것이라 비스타가 이쁘게 깔려왔다. 그냥 사용해도 괜찮냐는 질문에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 때쯤, M$에서 윈도우XP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중이였기에…

여튼 프린트 공유설정이며 몇 가지 문제로 비스타를 만저볼 기회가 있었다. 윈도우 치고는 깔끔한 외양에 호감이 갔었는데!!! 오늘은 아주 질려버렸다. 오늘 발생한 문제는 ActiveX가 깔리지 않는다는 문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마도 보안설정이 잘못 되었거니 하고 보안설정을 하려는데 아뿔사! A~~.dll(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하는 파일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익스플로러 창이 닫힌다. 헛! ㅡㅡ;

우선은 검색창에 파일과 관련된 오류에 대해서 알아보았지만 어떤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악성코드의 문제라는 점! 더 황당한 것은 여러 보완 관련 업체 광고만 뜰뿐이라는 점이다. 아마 악성코드나 바이러스가 많이 노리는 파일인 듯. 문제는 해결방법을 알 수 없었다는 점! 하는 수 없이 깔려있는 노턴 안티 바이러스를 통해 검색해봤다. 과연 쿠키 파일에 숨겨진 문제가 있긴 했다. 삭제했으나 문제는 여전하다.

하는 수 없이 새로 까는 수 밖에… 근데, M$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IE7은 XP용이다!! 젠장! 비스타 용이 없단 말이다!!! IE6로 갈아타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이건 뭐, 산너머 산이다. Virtual PC를 깔고 그 위에서 구동해야 한단다. ㅡㅡ; 이런 젠장… 문제는 첩첩산중. IE 7은 스스로 초기화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그 명령을 찾기위해선 도구 옵션에서 찾아야 하는데 접근이 불가능 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새로운 사용자를 만들어봤다. 가끔 까다로운 문제는 그냥 초기화 세팅을 한 새로운 사용자로 로그인 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기에… 제길, 마찬가지다. 프로그램 설치 및 삭제를 찾아보았지만 거기서도 IE7에 관련된 항목은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메뉴는 어찌나 복잡한지… ㅡㅡ;

결국 한참 시간이 걸려서 비스타는 기본적으로 IE7의 삭제나 설치 복구 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참담한 소식을 찾아냈다. 그것도 인터넷을 구석구석 뒤지고야 알아낸 사실이다. 결국은 비스타 전체를 밀고 다시 까는 수 밖에는 없단 말이냐!!!!

윈도우 7이 나온다고 한다. 관심은 가지만 OSX에서 갈아탈 마음은 전혀 없다. 물론 OSX도 타이거에서 레오파드로 오면서 약간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그래도 윈도우즈에 비하면 양반이다. 바이러스 걱정할 필요도 없지, 복잡하게 엉키는 레지스트리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 악성코드 같은 염려도 필요 없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일단 부팅을 시켜놓으면 다시 새로 재시작을 할 이유가 거의 없다. 한달에 한 두세번 정도? 너무 지나치게 오래 켜놓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 혹은 일주일 넘게 FM2008을 그냥 실행시켜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껐다가 켜는 정도다. 매일 잠자기 전에 재워놓고 아침에 Aurora로 노래부르며 일어난다.

여튼 결국엔 OSX 찬양론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M$의 윈도우즈 외에 다른 운영체제라면 이런 굴욕! 따윈 없겠지. 브라우저의 오류 때문에 OS를 새로 지웠다 깔아야 한다니… 벼룩을 잡다 초가삼간을 다태워야 하는 지경이다. 초가삼간이긴 하지만 구석구석 벼룩으로 덮혀 있기에 홀랑 태워버리는게 빠르기 때문이다. 이런 제길슨!!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채봉감별곡]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 6점
권순긍 지음/나라말

소설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져 조선 후기에는 드디어 책을 상업적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방각본(坊刻本)입니다. 방각본이란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먹을 묻혀 찍어내는 방식으로 소설책을 대량 생산한 방식입니다. 이때는 소설책을 빌려 주는 가게도 생겨났습니다.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유충렬전> 등 18~19세기에 많이 읽힌 소설은 바로 이러한 방각본의 형태로 유통되었습니다.

1910년대에 근대적인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우리의 고소설도 방각본이 아닌 ‘구활자본(舊活字本)’으로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구활자본은 표지를 울긋불긋하게 칠한 것이 아이들의 딱지 같다고 해서 ‘딱지본’이라 불리기도 했고, 가격이 육전이어서 ‘육전소설’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구활자본 고소설은 방각본보다 더 많이 출판되고 더 많이 읽혔습니다. 그러다보니 <춘향전>, <심청전> 같은 옛날 이야기 말고도 새로운 고소설들이 창작되었습니다. <채봉감별곡>도 그런 기세를 타고 1910년에 새롭게 등장한 고소설입니다.

160-161쪽, <채봉감별곡> 깊이 읽기

고전이 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고전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이 책이 불과 100여 년 밖에 안 된, 고전 가운데서는 아주 신출내기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고전’이란 시간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에 곱디고운 채봉이 우연히 만난 열아홉(혹은 열여덟) 살의 장필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혼인 약속을 하지만 자기를 세도가의 첩으로 팔아넘기려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런저런 역경과 고난이 있지만 결국 장필성과의 언약을 지키고 사랑을 사수한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사랑에 빠지고 혼인 약속을 하는 이들의 나이이다. 줄리엣이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 것이 불과 열넷이었듯 이들이 사랑에 불붙는 것은 불과 열여섯, 열아홉 정도의 나이. 중고등학생이 연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혼 약속을 한다면 어떨까? 아나 엄청난 소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장필성이 주인공 채봉을 처음 만나 적어 보내는 시가 압권이다. 오늘날 말로 하면 DYD! 들이대는 데는 선수다.

수건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가 풍기기
하늘이 나에게 정다운 사람을 짝 지어 줌이라
은근한 마음으로 사랑의 노래를 보내니
신랑 각시가 되어 신방에 들기를 바라노라

30쪽, 장필성이 채봉의 수건에 적어 준 시

이런걸 보면 밤낮으로 연애생각에 푹 빠져버렸던 십 대 후반 나의 철부지 같은 모습이 이해되기도 한다. (나는 내 자신에게 충실했을 뿐!)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몇 살에 결혼하고 싶으냐고.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지만, 불과 몇 년 뒤면 채봉의 나이(16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린 나이도 아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20대에 연애를 시작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에 결혼하고 싶단다. 책에 그려진 것과는 약 10년의 시간이 차이가 난다. 그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물학적 욕구가 사회적 시선에 의해 거세당하는 10년일 수도 있고,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발명된 근대의 선물(?)일 수도 있다.

나라말 출판사에서 나온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에는 책 중간에 책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바로 기방문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기방에서는 어떻게 놀까요? 술을 마시고 기생의 노래를 듣는데, 여기에도 까다로운 규칙이 있답니다. 기생에게 노래를 시킬 때는 반드시 합석했던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좌중에 통할 말 있소.”라고 운을 떼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시비가 일어날까 두렵기 때문이었습니다.

… 기방에서는 기싸움이 중요했습니다. 뒤에 들어선 사람이 힘이 세 보이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시비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기방에 들어서면, “평안호?”, “무사한가?”를 연발한 뒤 먼저 와 앉는 사람들에게 “자리 좀 죕시다.”라고 말합니다. 자리를 좀 좁혀 앉아서 내가 앉을 공간을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이때 기가 꺾인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뜹니다.

55쪽, 기방 풍경 1. 기방 규칙 좀 지키시오!

가장 낯선 사실은 여러 명이 한 기생을 만나 즐긴다는 사실! 그것도 잘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물론 그중에 몸을 파는 기생들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이런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기생들 가운데 등급이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점.

조선 시대 후기에는 기생의 수가 점점 많아져서 일패, 이패, 삼패로 등급을 나누었습니다. 가장 좋은 대우를 받은 일패가 ‘기생’인데, 가무를 익힌 상류사회의 연회에 참석하던 관기의 전통을 계승한 상층 기생들이었습니다. 이패는 기생과 구별해서 ‘은근자’라 불렀는데, 기생 출신으로 남몰래 매춘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삼패는 매춘 자체만을 업으로 삼는 ‘탑앙모리’ 인데, 손님 앞에서는 잡가만 부르고 기생과 같은 가무는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125쪽, 기방풍경 2. 기생의 집을 찾다

조선 후기가 배경인 터라 매관매직을 하는 세도가의 모습이 빠질 수는 없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위 관직자의 친인척! 오늘날도 대통령의 뭐다, 장관의 뭐다 해서 허풍떠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점. 부정부패로 망했다는 조선, 그 망국의 모습이 오늘날과 다른 점은 뭘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분경금지법: 조선은 개국 8년 만에 ‘분경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분경’이란 관직을 얻기 위하여 권세 있는 자의 집에 분주하게 드나들며 갖은 방법으로 애쓰는 것을 가리킵니다. 조선 시대에는 고위 관리의 집에 3, 4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이 출입하는 것은 허락도었으나, 재판의 판결을 담당하는 관리의 집에는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 하더라도 문병과 조문 이외에는 출입을 금했습니다. 고위 관리나 왕의 친인척 집에 사사로이 찾아갔다는 게 밝혀지면 곤장 100대에 유배 3천 리라는 처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관직에 임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는 다른 죄의 형벌을 생각해 보았을 때, 비교적 무거운 중형에 해당됩니다.

83쪽, 여기는 매관매직의 현장입니다

이곳을 찾는 한동대학교 동문들에게

얼마 전 쓴 글이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네요. 댓글로 의견을 달아놓은 학우들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엔 간단한 댓글보다는 새로 포스트를 쓰는 것이 낫다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늦었죠? ^^; 게으른 탓에 그렇습니다.

 

블로그 포스트 이용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본 블로그에 올린 모든 글은 수정 및 이동이 자유롭습니다. 단 상업적 사용을 하지 않는 조건 안에서 그렇습니다. 퍼가거나 인용할 때는 출처를 밝혀주는 정도만 된다면 충분하겠습니다. 그 정도 센스는 기본이겠죠?

아울러 제가 쓴 글을 대자보로 붙이는 데는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쓴 글에 밝혔듯 대자보란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밝히는 비공식적 통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동대학교 재학생도 아니며 그렇다고 이번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의 글은 제 개인의 글이며 그렇다고 해서 어떤 강한 요구를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을 뿐입니다.

따라서 darius님이 이 글을 많은 학우가 읽기를 바란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를 인용하거나 본 글을 소개하는 것은 상관없겠죠. 제 개인적인 바람은 현 재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해주는 것 입니다.

이영건님께도 비슷한 대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인용은 마음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출처만 밝혀주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용할 경우, 기사 내용을 제가 어떻게든 받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삼에서 받은 몇 가지 질문

아이삼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유머란을 이용하러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아닙니다. 가끔 글을 쓰거나 그에 대한 반응을 보기 위해 들어가는 정도입니다. 얼마 전 글을 올리고 며칠 뒤 다시 들어가봤더니 김미영 교수가 쪽지를 보냈더군요.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메일을 보내면 쓴 글에 대한 답변을 주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수고롭게 메일을 쓸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저는 이 일이 전혀 개인적인 일이라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그 이후 김미영 교수가 학우들에게 더 성숙한 모습으로 정중한 사과를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학우는 제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더군요. (졸업했느냐는 질문은 우문입니다. 글 머리에 졸업생이라고 밝혀 두었는데 말이죠.) 개인적인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추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니 생략합니다. 블로그에서 제 신상을 자세히 밝히고 싶지 않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인터넷 공간에서 개인 신상 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요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하는 일을 밝히자면 저는 현재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철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며 사상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참, 세부 전공은 동양철학입니다.

학교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학우들이 있네요. 글쎄요. 저는 제가 졸업한 학교를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사랑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무엇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학교를 미워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학 시절 추억은 매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경해 마지 않는 몇 분의 선생님이 계신 곳이기도 하죠.

학생들을 추동해서 교수를 비웃는다는 이야기는… 참 어이가 없네요. 저는 20살이 넘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글로 학우들이 선동된다면 학우들이 무지한 것인가요? 아니면 제가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 것인가요? 그리고 교수를 비웃는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저는 비웃음당할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는 않으신지요?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수가 그렇게 몰상식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저는 부끄럽습니다.

 

논쟁의 방향에 대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노 교수가 가진 학문적 업적에 관한 평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제가 읽은 역사책에선 그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도 사상사를 하는 입장에서 역사에 대한 관점을 밝히자면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단지 과거의 사건이죠. 오히려 해석된 그 자체가 ‘역사’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영익 교수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누구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동정의 눈길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어떤 학자건 자신이 주장한 학설에 관해서 강한 자신감을 갖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학설은 자기의 세계와도 같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학자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떤 논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논쟁에서 이긴 학설이 결국엔 살아남는 것이겠죠. 아마도 유영익 교수는 학교 밖에서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많은 비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학교 내에서의 비판보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겠죠. 그마저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년간의 노력을 기울여 세운 탄탄한 학설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개인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학자는 자신의 학설과 글을 통해 평가받아야 합니다. 교수라면 우선 강단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아야 하죠. 인품이, 신앙이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신앙이 좋아서, 인품이 훌륭해서 강의를 맡은 것이라면 그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강단에서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로 만나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것이 더 많은 배움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같은 찬사는 강의를 맡은 교수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요? 학문적 업적은 보잘 것 없지만 인품이 훌륭한 사람보다는 인품이 비록 못났지만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 학자로서 더 가치있는 인물임이 확실합니다. 이 같은 점은 논란이 되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겠죠. 그가 뛰어난 신앙인이었다는 점은 ‘역사’를 읽는 데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승만을 배워야 한다면 그는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수업에서 다루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한국기독교회와 국가.시민사회]_이승만을 닮고 싶은 2MB의 삼박자 축복!

한국기독교회와 국가 시민사회 (1945~1960) - 10점 강인철 지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대학 졸업 직전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교회사를 해석한 시도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 아래서 어떻게 교회가 친미, 반공 사상을 갖게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기간은 1945~1960년까지, 광복 이후로부터 4.19혁명으로 인한 이승만 퇴진까지. 이 책을 읽으며 과연 현 이명박 정부는 어디까지 퇴보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20~30년은 가볍게 뛰어넘고 벌써 50년 전까지 뒷걸음 치고 있다.

책을 다 읽을 수는 없어서 책 뒤에 실린 색인을 참고해서 이승만에 관한 부분만 찾아봤다.

이 시기(제1공화국)의 개신교 교회는 시민사회의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위로부터의 요구’를 대표하는 데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제1공화국은 이승만의 1인 독재를 중핵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였다. 이승만은 자신을 ‘국부(國父)’로 간주했다. 그리고 그는 반대여론을 개의치 않고 국가를 친기독교적 방향으로 운영했다. 그의 이같은 행동에는 그 자신의 기독교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승만은 한 때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으며, 하와이 한인교회에서 교역자로 봉사했고, 귀죽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교회기관을 무대로 활동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 이승만은 개신교에 특혜를 집중시키고 다른 종교들을 직간접적으로 억압함으로써 개신교를 ‘사실상의 국가종교’로 만들어갔다. 이러한 사실은 “지배계급 분파에 대해 자율적인 국가는 역사적 변혁기에 사회경제적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지배적인 종교형태에 중요한 종교적 혁신 나아가 지배적 종교의 대체까지도 후원할 수 있다”는 가설과, 필자가 ‘권위주의적 통제모델’이라고 이름붙인 가설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낮은 정당성 수준’ 역시 국가-교회관계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1공화국 기간 동안 정당성은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국가정책으로 인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낙후된 경제수준과 잉여의 항상적이고 대규모적인 해외유출 때문에 국가가 중간층과 민중 부분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협소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사회 전반에 넓게 확산된 잠재적 불만을 통제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감압적이고 배제적인 수단에 의존했으며, 이는 다시 국가 정당성을 실추시켰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국가는 정당성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회적 영향력과 공신력이 큰 종교집단들의 지지를 얻어내거나 중립화시키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당시 개신교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컸으므로, 국가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개신교에 집중되었다. 국가는 개신교회에 다양한 특혜를 제공했으며, 개신교 지도자들은 권력구조로 순조롭게 충원되었고 그 결과 지배구조 안으로 편입되어갔다. 이 시기의 국가 - 개신교 교회 관계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협조”로 표현했듯이, 양자의 관계는 ‘상호승인과 야합’으로 특징지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162-163쪽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도 ‘교회의 정치화-정치의 교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서울을 봉헌하겠다고 한 이명박이 가장 닮고 싶은 것은 IMF의 쾌거를 일궈낸 영삼 장로나, 경찰을 사조직화 한 땡전 각하나, 조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쿠데타를 벌인 박 소장이 아니라 바로 국부(!!) 이.승.만 일지도 모른다. 건국 60주년이니, 뉴라이트를 통한 이승만에 대한 새로운 평가작업같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웃기 민망한 허탈함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니 명박이는 나쁜 것만 다 솎아서 배운 넘이잖아!!

선거참여의 경우 가장 조직적인 형태로 진행된 사례는 1952년 정부통령 선거와 1954년 국회의원 선겨였지만, 이미 1948년의 5.10선거에서부터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승만을 지지’했다. 1952년 제2대 정부통령 선걸르 앞두고 그 해 7월 26일 ‘한국기독교연합회’(NCC)는 회장 전필순의 이름으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회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는 도.군.개별 교회 단위까지 하위조직을 갖추고 선거 전주일을 ‘선거기도일’로 지키는 등 조직적인 이승만 지지운동을 벌였다.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에 추대하는 이유로서, 기독교계의 요청을 수용하여 국기경례를 주목례로 대신하도록 고쳤고, 국군에 군목제도를 설치했으며, 국가의식을 기독교식으로 지령하는 등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들었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때에는 교회가 정치단체가 될 수 없으며 “교회가 어느 정당에 편승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면서 더이상 교회단체엽합의 선거운동조직 결성이 시도되지는 않지만, 비록 개인자격일지라도 여전히 ‘정부통령 선거추진 기독교도중앙위원회’가 구성되어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선거운동에 나섰다. … 이승만이 소속된 정동제일교회는 선거가 예정된 해 1월에 이승만을 장로로 선임하고, 3월에는 ‘삼선출마 호소문’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3월 22일에 감리교 중부연회는 ‘이승만 박사 재출마요청 성명’을 내기로 결정하고, 박현숙.김활란.구성서.이호빈.박창현을 그 위원으로 선출했다.

…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도 그 해 2월에 있은 자유당 주최 ‘교계지도자초청모임’에 당시의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는가 하면, 이승만과 이기붕은 ‘전국교회 150만 신도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여 개신교 신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166-167쪽

지난 몇 개월을 지켜본 결과 (기득권) 교회는 이미 정권의 시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교회는 해마다 2~3번의 부흥회를 갖는데 요즘은 이게 정치적 선전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직접적으로 이명박을 언급하지는 않더라도 불교계를 깐다던가,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사회 불순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한글을 읽을 수 있으면 초딩만 하더라도 아주 쉽게 메뉴얼을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뉴스만 신문, 뉴스만 보면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튼, 기독교가 왜 그리도 권력에 집착하는지는 고찰해볼 만한 문제다. 현대 기독교가 갖고 있는 확장 혹은 팽창주의의 연속선 위에서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정치적 주도권을 잡아놓고는 하는 짓이라고는 죄다 문젯거리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승만, 김영삼을 이어 개신교 신자로서 대통령이 된 이명박은 앞선 이승만의 똥고집에다 김영삼의 무개념을 기본으로 탑재한 것은 물론 선대 군사 정권의 치적까지 모두 답습하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건전한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통하는 선지자의 목소리는 어디 갔는가? 무덤에 회칠한 자들이란 바로 이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이승만을 통해 이명박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아스트랄한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보려 했기 때문이 문제가 아닐까? 그가 대통령이기 이전에 ‘장로’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의 정치관이나 경제관에서 문제를 찾지 말고 그를 만든 천박한 한국 개신교 신학에서 문제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기복정당으로서 딴나라당이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준 것처럼 그도 기복정권으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지 않을까? 정치적 입장이야 고개를 돌리면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렇게 쉽게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믿슙니다를 외쳐랴! MB께서는 삼박자 축복을 내려주시나니. 믿는 자에게는 인떠네숄한 오륀지 교육! 경기를 부양(腐썩을 부.佯속일 양)시키는 부동산정책! 상부상조를 위한 낙하산인사! 이 셋을 오늘도 축복으로 내려주신다. 믿지 않는 자에겐 물대포와 몽둥이 찜질, 소환장이 있을 터이니 가난하고 병든자들은 모두 눈앞에서 떠나거라~!

…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그는 결코 회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에 분노한다.

졸업 후 학교 소식은 거의 듣지 않는다.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지금 내가 살아가는 나의 현실, 내가 부딪히고 마주치는 세상이 나에겐 벅차기 때문이다. 가끔 후배의 블로그에 들려 글을 읽다 학교 소식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정도. 그런데 얼마 전 학교에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 강의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 그러려니 했다. 기독교 계열 학교다 보니 다른 학교보다 뉴라이트 논조를 따르는 강의가 열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듣고 말고는 학생들의 몫. 그런데 오늘은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관련된 학생 대자보를 어느 교수가 찢어 버렸다는 사실. 그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교수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그 낯선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광장에서 만난 이방인

어느 주말이었다. 습관처럼 광화문 거리로, 아니 뻥 뚫린 광장으로 나갔다. 그날도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각기 어디서 어떻게 모였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사람들 틈을 누비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큰 북을 몇 개 모아서 난타 공연을 벌였고 각기 악기를 갖추고 나온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 그날은 거리에 앉아 기타를 치며 사람과 노래하는 안치환을 보기도 했다.

새벽이 되어서, 아마도 새벽 2시쯤인가 서대문 쪽에서 어떤 무리가 지나갔다. 그들은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나왔나? 사실 그 큰 광장에서 기독교인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지다. 하지만 그렇게 어색한 일도 아니었다. 전경차를 끌어내는 밧줄을 처음 잡아본 어느 날, 내 옆에는 찬양을 부르며 밧줄을 함께 잡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주의 군사~, 나는 주의 군사~’라며 자신을 다독이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지나가는 무리를 보며 그러려니 했다. 어느 교회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삼삼오오 모였을 수도 있지.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동아 면세점 앞. 그들은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좀 쉴 자리를 찾다 어느 벤치에 앉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 무리의 옆이었다. 가만히 앉아 쉬노라니 누군가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일제 시대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당시 일본이 물러나게 된 것은 미국의 강대한 군사력 때문이란다. 일본이 미국에게 망한 것은 목숨을 잃기까지 금식하며 기도한 몇 목사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이 불순한 세력을 몰아 낼 수 있는 것은 금식 기도뿐이란다. 만약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먼서 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한다면 자기도 참가하겠단다. 아내가 화를 버럭 낸다. 사람들을 ‘선동’해 놓고 자기는 슬쩍 물러서는 태도에 발끈하고 말았다. “왜 남들부터 하라고 하나!”

주변에서 탐탁지 않게 지켜보던 이들이 더 있었다.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서둘러 설교를 마치고 기도하잔다. 먼저 목소리로 제압하기! 주여 삼창! 이어지는 큰 기도소리. 그 순간 울컥 화가나고 말았다. 저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영적전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 어쩌면 나와 나의 아내를, 그리고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동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벤치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성경에 어디에 가진 자와 힘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약한 자를 위하여 애통하고 슬퍼해야 하는 것이 기도 아닙니까!”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혹시나 주먹다짐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그 손을 뿌리쳤다. 어떤 사람은 자기도 기독교인인데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참으란다. 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고 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 두 여자가 끼어든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놀라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저 한동대 교수에요.” 그 자리에서 ‘한동대’라는 이름을 듣게 되다니!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소리가 마치 교양을 갖춘 중산층 여자라는 것을 과시하는 말이듯, 한동대는 ‘건전한 기독교인’을 드러내는 수식어였다. 게다가 교수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한동대 학생이란다. 뭐 그런 생각이었겠지. 한동대 교수와 학생이 참여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 게다가 주류의, 아주 건전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내새우고 싶었겠지. 기가 찼다.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데 교수를 사칭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가 졸업하기까지 ‘김미영’이라는 교수는 없었는데. 그러면서 자기들은 에스더 구국기도모임으로 금요철야 기도를 나왔다고 말한다. 더 이상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다.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정치적이라는 뻥은 집어치라!

이번에 한동대에서 강의를 맡게 된 유영익 교수에 대해 찾아보았다. 공교롭게도 검색 결과 가운데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이 한동신문사와 유영익 교수의 인터뷰기사.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이 뉴라이트계 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은 ‘독립적’ 학자일 뿐 정치적이지 않다. 이번 학기에 우리 역사상 최초의 세계적 지도자였던 이승만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의외로 뛰어난 학자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가 ‘독립적’, 비정치적 지식인이라는 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가 가르치고자 하는 ‘이승만’이라는 인물 자체가 비정치적일 수 없다. 유영익 교수가 말했듯 이승만은 문제적 인물이다. 그것은 이승만이 이념적 선택을 했던 ‘정치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면 그를 읽을 이유가 없다. 그 결과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분히 이념이다. 유영익 교수가보다 비정치적인 혹은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다루고자 했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념적인, 그것도 아주 단순하고 굵은 이념적 특성을 갖는 인물이다.

근대적 학문의 배치에서 ‘정치’라는 영역이 구별되는 동시에 ‘정치인’이라는 특수한 인물이 탄생했기에 우리는 ‘정치’가 어떤 개별적인 독립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정치는 보편적이다. 철학을 전공하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철학은 정치적이라고. 사람들은 비판한다. 촛불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불순하게 바뀌었다고. (특히 불교를 가리켜) 종교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사제가 정치적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고. 그러면서 정교분리라는 해묵은 개념을 들먹인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의 종교적 성향이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지. “고소영” 인사라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교분리는 서구 기독교가 낳은 개념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에 관여하는 교회의 입김을 숨기기 위한 허울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참고로 이승만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종교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대통령이었다. 그를 통해 기독교는 알게 모르게 정치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강인철 교수의 “한국 기독교회와 국가 시민사회”를 읽어보길) 이명박 정권 아래서 유영익 교수가 외치는 이승만에 대한 찬가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 때문 아닐까?

김미영 교수는 “사랑하는 한동국제정치학회와 한동의 여러 친구들에게”라는 글에서 대자보를 찢은 것이 자신이라며 간단하게 미안하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붙어있는 학생의 대자보를 찢은 것이 과연 국제법을 전공했다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상식에 맞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여러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제가 학생식당 앞 게시판 한동국제정치학회 명의의 대자보를 제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학회 친구들이 몹시 언짢아서 제게 사과를 요구했군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대자보에는 우리 학교 게시물의 원칙과는 달리 게시자의 연락처가 없더군요. 총학생회에 올라가 찾아달라고 했지만 알 수 없어서 나중에 겨우 M군의 전화번호를 얻어 전화를 걸었더니 수업 중이었는지 전화가 안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일단 대자보를 떼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측에 있는 대자보는 유영익 교수님의 수업 T.A.를 맡고 있는 N군에게 부탁해서 내려놓도록 했습니다.

이 대자보는 이번 학기에 처음 열리게 된 연세대 유영익 석좌교수의 [근현대사] 수업과 부교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교수님은 지난 3년 반 동안 제 수업에 특강을 위해 한동을 오셔서 제게는 특별한 인연이 있고 무엇보다 이 대학자와 함께 교단에 선 것에 대해 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 첫 수업을 하시던 날, 한동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유교수님께서 상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저는 이 분이 또 이 대자보를 보게 될까봐 몹시 마음이 졸아들었습니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읽고 전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하는 변명이 ‘게시자의 연락처를 기재해야 한다는 학교 게시물 원칙’과 달랐기 때문이란다. 이어서 게시자와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게시물을 임의로 제거했다고 말한다. 과연 이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일이기나 할까?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란 자신이 유영익 교수를 매우 존경하고 그가 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한 일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성서의 야고보서 말씀을 인용하여 ‘화평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끝맺고 있다.

그에게 있어 대자보를 제거한(혹자에 의하면 찢어버린) 일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일일 뿐이다. 교수라는 자기 자신의 신분, 그리고 대자보가 의미하는 함의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그냥 붙여놓은 개인적 메모지를 치운 수준의 일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자신의 부동산 투기를 숨기려고 ‘힘’을 사용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의 사건이 기억나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일 뿐일까?

사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다. 김미영 교수는 자신의 행위가 자기의 정치적 ‘이념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일까? 대자보를 멋대로 없애버린 것은 자기의 의사를 ‘대자보’라는 특수한 통로를 통해 펼칠 수밖에 없었던 소수의 학생들을 교수라는 자신의 ‘권력’으로 짓밟는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일까? 정치가 일종의 ‘권력’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정치적’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또한 현 시국의 정치적 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 기사화 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모 대학 교수, 뉴라이트 수업 반대 대자보 찢어’ 그러기 때문에 일종의 ‘사건’이다.

학교라는 특수성, 거기에다 기독교 학교라는 종교적 특성으로 이 사건의 정치적 단면을 가려보고자 한다. 게다가 개인적 관계까지 내세워 삼중으로 문제를 가리려고 한다. 다 걷어내고 보면 당신들이 말하는 ‘정치’의 현주소를 바로 볼 수 있다. 아마 이런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학우들은 그리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언론을 통해 익히 보았던, 그리고 몸으로 이미 체험하고 있는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집권 세력이 정권을 사유화하고, 언론을 사유화 하며 또한 입맛에 맞추어 공권력까지 길들이고 있는데 어느 대학의 교수가 벌인 작은 일이 대수겠는가?

나는 그들의 시선에 분노한다.

오늘도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내 상식의 그릇이 작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상상력이 나를 뛰어넘기 때문일까. 이젠 놀라는 데도 지쳐버렸다. 이 무개념 정치의 축소판에 불과한 작은 사건에 내가 분노하는 것은 나의 신체에 각인된 그의 시선 때문이다. 나를 무지몽매한, 폭력적인, 덜 배운, 덜 가진 자로 치부해 버리는 그 시선. 자신을 正의 자리에 나를 不正의 자리에 놓고 깔보듯 내려다보는 그 시선은, 불편함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너희는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라는 관념이 그 시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부재’라는 것은 화법의 문제가 아닌 시선, 즉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정치적’인 것을 끊임없이 비정치적 영역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성’을 지우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정치적 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것으로 면죄부를 삼는다. 그것은 동시에 자신들이 가진 (거의) 유일한 무기인 ‘권력’의 흔적을 지우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권력은 힘의 차이를 이용해서 작동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것이 그 힘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며 대학 교수는 교수라는 직위가 그 힘을 가늠하는 주요한 척도가 된다. 거기에는 대상이 자신과 동등한, 아니 그저 ‘다름’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런 시선 위에서 사랑과 평화를 논해보았자 그것은 또 다른 시선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분노한다. 나의 정치적 기능을 거세한 현 정권의 폭력성에 분노한다. 정치란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건만 그 기본적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무능력에 분노한다. 학생들의 정당한 언로조차 무참히 강탈해 버리는 몰상식한 행동에 분노한다. 나는 그 시선이 싫다. 그 태도가 나를 불온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FM2008 ManCity] 07-08첫 시즌_선수 분석과 영입까지 …

지난 번 맨시티로 첫 시즌을 돌린 결과를 올린 이후 다시 새로 게임을 시작하고 말았다. 별 큰 이유는 없었다. 스왑 리그 DB를 이용하는 데 그만 상위 2개 리그만을 선택하는 바람에 나머지 팀들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새로 게임을 시작했다. 똑같이 “에펨의 신 스왑리그” DB를 이용했다.

우선 첫 시즌을 돌리고 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 시즌 결과: 실점이 상당히 많다.

첫 시즌 결과: 실점이 상당히 많다.

리그 46경기와 각종 컵대회를 포함해서 총 61 경기를 치렀다. 아마도 이는 프리시즌 경기도 포함된 결과인듯. 경기당 평균 2.6골을 넣었고 1.2골을 실점했다. 득점력은 그런대로 봐주겠는데 실점이 말이 아니다. 아마도 수비진이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

 

불안한 수비, 화려한 공격

사실 맨시티의 수비진은 공격진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Richard Dunne과 Micah Richards를 주전로 세우고 거기에 이번 시즌 합류한 Vincent Kompany를 후보로 세우면 되긴하다. 그 밖에도 08-09시즌(실축 반영, 게임은 07-08시즌에서 시작한다)에 영입한 이스라엘 출신 수비수 Tal Ben Haim과 브라질 출신 Glauber가 있지만 S급 수비수라고 보기엔 힘들다. 게다가 시즌 초반에 Kompany가 장기 부상을 끊는 바람에 수비진에 큰 구멍이 나고 말았다. 

측면 수비수의 현실은 더욱 처참하다. 오른쪽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Pablo Zabaleta가 어느 정도 해준다. 그리고 여차하면 Richards나 Kompany를 오른쪽 수비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왼쪽 윙백의 경우엔 마땅한 선수가 없다. Javier Garrido와 Michael Ball이 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 이 둘은 후보로 돌리기엔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주전으로, 그것도 강팀이 즐비한 스왑리그에서 한쪽 측면을 맡기엔 불안하다.

골키퍼도 마찬가지이다. 20대 초반 동갑내기인 Joe Hart와 Kasper Schmeichel이 있지만 어째 불안하다. EPL의 빅4 수문장들과 비교해보면 딸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공격수들은 화려하다. 공격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Elano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S급 공미인데다 이번 시즌 영입한 Robinho와 SWP(Shaun Wright-Phillips)도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에서 뛰던 선수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딸리는 공격진은 아니다. 게다가 기존의 Valeri Bojinov와 Martin Petrov까지 더하면 측면 공격은 빵빵하다. 다만 중앙 공격수가 어정쩡하다. 관록(?)의 Benjani Mwaruwari나 브라질 신예 Jo 모두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다. 하지만 특급 공격수인가 하면 그것은 아닌 셈.

미들진은 유망주로 넘처난다고 볼 수 있다. Machael Johnson과 Gelson Fernandes는 꽤나 유명한 유망주들이다. 거기에 Stephen Ireland도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 여차하면 Kompany를 수미로 기용할 수 있으므로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단 실축에서 나오는 Dietmar Hamann 옹은 나이가 많은 터라 리저브에 처박아 두고 말았다. 

스왑리그를 선택하건 혹은 다른 DB를 사용하건 모두 2007년 여름부터 게임은 시작된다. 근데 문제는 대부분 선수들의 계약 만료가 2009년 6월 30일 이라는 거다! 사실 1년이라도 앞 당겨 있다면 주급도 줄이고 내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차곡차곡 쌓아 갈텐데 그러기엔 자리를 떠야할 노장들이 적지 않다. 여튼 07년 여름, 새로운 감독의 부임으로 팀에는 개혁의 칼날이 번뜩이게 된다.

 

역시나 오일머니로 쳐바른 자금력이란!

이번 Robinho의 영입에서 볼 수 있듯이 맨시티는 자금력에서만은 어느 구단 못지않게 되었다. 물론 아직 팀 명성이 뒤따라 오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여튼 자금력 하나만 보자면 FM을 즐기는데 아주 적당한 팀이다. 소수의 뛰어난 공격진과 유망주들, 그리고 달성해야할 목표까지. 게다가 충분한 총알까지 있다! 게임을 시작하고 목표치를 리그 우승으로 잡았더니 140M 유로를 준다. 한화로 약 2,260억정도 엄청난 영입자금이다. 자, 이젠 쇼핑 타임이다. 

나이 들었거나 후보로 분리된 선수들을 우선 팔아 치우자. 양쪽 측면 수비수, 스트라이커, 골키퍼의 영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화폐 단위는 ‘유로’이다. 한화로 계산하고 싶으면 약 1600을 곱하면 된다.)

 

방출명단

방출명단

한 시즌동안 팔아치운 선수들의 명단이다. 사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팔아 넘길 선수들은 없다. 게다가 좀 팔아보고 싶은 선수들은 죄다 팔리지가 않으니… Ireland가 5M, Ricahrd Dunne이 8.5M, Jo가 11.75M으로 팔려갔다. ㅡㅡ; 팔아서 마련한 자금은 겨우 27M … 언제나 그렇지만 벌어들인(?) 돈보다는 쓰는 돈이 많기 마련이다.

 

영입명단

영입명단

한 시즌동안 영입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무려 138M이라는 돈을 펑펑 써버렸다. 그 중에 Huntelaar에게만 무려 70M이라는 돈을 쏟았다. 사실 Huntelaar도 겨우 영입했다. 돈은 남아돌지만 명성이 낮은 터라 S급 선수들은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나마 겨우 관심을 가진 친구가 Huntelaar이다. 과연 그만한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쩌겠는가. FM이란 합리적 선택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우선인걸. 그와 함께 Rafael Sobis를 11M에 영입했다. Sobis는 항상 수치로 나타난 것 이상을 보여준다.(양발이라 그런가?) 가격대 성능비로 따지자면 엄청 남는 장사를 한 셈. 그리고 중앙 수비를 볼 수 있는 전력감으로 Cristian Zapata를 데려왔다. 17M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였지만 역시나 꽤나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다. 피지컬도 좋고 수비력도 괜찮다. 앞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이 선수들은 몇번의 게임을 통해 익숙한 얼굴들이다. 역시나 이미 써본, 능력이 검증된 선수들이 최고다!

왼쪽 측면 수비로는 Jeremy Mathieu를 데리고 왔다. 5M이라는 저렴한 가격! 가격에 믿기지 않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다! 더구나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라는 점도 매력이다. 오른쪽 측면 수비로는 Antonio Barragan을 영입했다. 준수한 능력치. Zabaleta와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나이가 더 어리다는 점이 장점. Mathieu만큼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시즌 영입으로 가장 성공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Diego Buonanotte와 Steven Defour를 영입했다는 점. 88년 생 동갑인 이 둘은 어리지만서도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시즌 내내 중원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각각 10M이 넘지 않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영입했지만 한 시즌을 돌리고 난 뒤에는 배가 넘는 가격대로 뛰어올랐다, Buonanotte는 AMC로 Defour는 MC로 각각 기대되는 유망주이다.

마음이야 S급 골키퍼를 영입하고 싶지만 Huntelaar에 엄청난 거액을 투자하는 바람에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도 Franco Costanzo는 제법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 마음 같아서는 싼 값(6M)에 Ustari를 영입하고 싶었지만 워크퍼밋이 나오지 않는 관계로 도저히 영입할 수 없었다.  

 

우주방위대 더블 스쿼드엔 여전히 부족해~

물론 더 좋은 영입 카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면 알뜰하게 선수를 영입했다고 평가한다. 명성이 높아서 데려올 수 있는 선수들이 더 많았다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이정도로 한 시즌을 마치고 다음 시즌에 명성을 더 높힌 이후 좋은 선수를 영입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실재로 한 시즌을 빠듯하게 돌려보니 쉽지는 않다. 60게임 정도를 한 시즌에 소화하려면 더블 스쿼드가 필수인데 아직 선발과 후보 간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밖에는 없다. 물론 모든 FM 폐인들의 로망이 우주방위대로 더블 혹은 트리플 스쿼드를 만드는 것일 테지만, 그러려면 에디터를 이용하지 않는한 한 시즌으로는 턱도 없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GK 골키퍼: 적어도 한 명의 S급 선수가 필요하다. 가격대비로는 Ochoa가 제격! 다음시즌 타겟이다.
  • DC: 피지컬을 우선시 하는 나의 취향상 Dunne은 너무 낡았고 Kompany는 아직 어리다. 보강이 필요! Richards와 Zapata 정도의 선수가 더 필요하다. 
  • DR: 마음 같아선 Daniel Alves나 Rafinha를 쓰고 싶지만 당최 관심을 가져야 말이지. 그래도 가능성 있는 Rafinha를 노려볼 수밖에.
  • DL: Maxwell이나 Chiellini를 영입하고 싶지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뿐더러 몸 값이 너무 높다. 한동안 Mathieu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간간히 후보로 Ball과 Sahko를 출전 시킨다. 보강이 필요한 자리.
  • MC: Michael Johnson이나 Gelson, Defour, Elano가 돌아가면서 책임지면 충분하다. 다만 Johnson과 Gelson보다 수비력과 패싱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하다. Bodmer나 Veloso같은 선수면 딱 좋겠다. Toulalan이나 Fabregas는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Moutinho는 첼시로 팔려가고 말았다. ㅠ.ㅠ
  • AMC: Elano와 Buonanotte가 돌아가면서 출전한다. 간혹 Sobis도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다. 여차하면 Bojinov나 Petrov까지도 끌어 들일 수 있다. 패스웍과 중거리 슛 능력을 갖춘 Kaka나 VDV같은 선수가 있음 좋겠는데 역시 그림의 떡이다.
  • AML: Robinho가 선발로 출전하고 Petrov와 Bojinov가 번갈아 출전한다. 그럭저럭.
  • AMR: SWP가 선벌로 출전하고 Bojinov가 백업이다. 양쪽 윙은 준수하나 많은 게임을 치르기엔 보강이 필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Silva를 데려오고 싶지만 역시 침만 삼킨다. C. Ronaldo는 생각도 못해봤다.
  • FC: Huntelaar와 Jo가 번갈아 가면서 출전한다. Mwaruwari도 가끔 출전하고. 만족하긴 하지만 더 화려한 선수가 있었음 좋겠다. ‘Kun’ Agero를 부르고 싶지만 몸값도 높고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써보고 싶은 선수는 많지만 꿈만 가득한 포지션. 

세기말 비엔나로 떠나는 시간여행

세기말 비엔나 - 10점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생각의나

내가 공부하는 서양음악 분야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초기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양식(classic)은 특수한 의미가 있다. 나는 서양고전음악이 고급문화라는 지위를 차지하는 현재에 일정 부분 어떤 모종의 권력장치가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별로 없다는 거다. ㅜ.ㅜ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는 나의 의심에 작은 실마리를 던져준다. 쇼르스케가 그린 19세기 말 비엔나의 지식인과 예술인들은 좌절된 사회적 욕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을 위한 예술” 주의자들이다.

제국의 종말 - 10점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김훈 옮김/가람기획

세기말 비엔나를 읽다가 함께 읽은 책. 타임 라이프에서 나온 어떤 시리즈 물 중 하나.19세기 프란츠 요제프 황제 등극으로부터 시작해서 1차 세계 대전까지의 비엔나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아름다운 왕비 엘리자베트로부터 노벨 평화상을 최초 수상했던 여성 노작가, 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했던 여성 공장 근로자까지. 다민족으로 이루어졌던 합스부르크-헝가리 제국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었던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에서부터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미감을 창조해냈던 빈 공방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세기말 비엔나를 수직과 수평으로 절단하여 섬세한 결로 되살려내는 점에서 석학 쇼르스케의 [세기말 비엔나]에 못지않는 훌륭한 책이다. 서사로 구성된 당대 비엔나의 인물들의 삶과 곁들여진 도판 자료들이 풍부하다. 역사 자료들이 따로 짤막하게 삽입되어 있어 역사적 사실 또한 놓치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악마의 유혹에 빠지다. FM 2008!!

08-09시즌이 개막되고 나서 이적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며 속으로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ㅡㅡ; 결국엔 다시 악마의 손에 빠지고 말았으니 바로 FM2008을 다시 시작하고 만 것이다. ㅠ.ㅠ FM(Football Manager)는 축구 게임이긴 하지만 축구와 동일한, 하지만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어쩌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FM을 좋아하는 사람은 애초에 서로 다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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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FM2009!! 근데 ㅡㅡ; 체 헹님께서 등장하셨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FM시리즈를 즐겨오고 있다. 제대로 푹 빠진 것이 FM2005부터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바둑알 엔진(ㅡㅡ; 축구 선수들이 바둑알이 되어 그라운드를 뛰어 댕긴다)을 처음 탑재한 버전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 PSV에서 뛰고 있던 박지성, 이영표 때문에 PSV로 네덜란드 리그를 즐겼다. 요즘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지만 네덜란드 리그는 PSV, 페예노르트, 아약스의 3강체제가 워낙 강력해서 이들을 재껴버리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리그다. 당시엔 몰랐지만 S급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긴 했다. 여튼 그렇게 PSV로 세 시즌인가를 돌렸는데 리그우승, 리그 컵, 챔피언스 컵까지 싹쓸이했던 기억이 있다.

옛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번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팀은 바로 맨시티였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퍼부은 물량공세는 맨시티가 Big4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 첼시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첼시에 이어 FM 구단이 또 하나 생겼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튼, 게임은 즐기라고 있는 법! 강력한 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맨시티를 한번 꾸려보고 싶어졌다. ^0^

8월 이적시장 내용이 반영되길 바란다면 로스터 패치가 된 DB를 구해야 할 판, 내가 선택한 DB는 “에펨의 신 스왑리그“이다. 그냥 프리미어 리그로 게임을 진행했다면 원만히 Big4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기존 Big4가 모두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못할 것까지는 없다! 너무 쉬우면 안 되니까 스왑리그를 선택했다. 스왑리그의 장점이라면 진정한 강팀들이 쉴 새 없이 경쟁한다는 점. 너무도 강해진(?) 맨시티를 위해선 적절한 선택이었다. 첫 시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맨시티의 명성이 낮은 바람에 원하는 S급 선수들을 긁어모을 수는 없었다. 돈은 많은데 쓸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게다가 맨시티가 이번에 대거 선수들을 보강했다고 하지만 다른 빅클럽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스쿼드가 빈약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왑리그에서 맨시티는 2부리그 Championnat Coca-Cola에 속해 있었다. 가장 힘든 점은 살인 같은 경기일정! 무려 23개 팀과 리그 경기를 가져야 하고 거기에 UEFA컵, FA컵, 칼링컵까지 나가야 한다. 한창 피로도가 절정에 달할 윈터시즌 코앞에서는 기본 컨디션 이 92-95%인 상태에서 경기에 나가야 했다. 욕심 같아서야 UEFA컵, FA컵, 칼링컵, 리그 우승까지 싹슬이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리그 우승과 승격, 그리고 FA컵 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S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여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밖에…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일찌감치 리그 우승과 승격을 결정지었다.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일찌감치 리그 우승과 승격을 결정지었다.

한 시즌을 돌려본 결과 맨시티는 아직 보강할 곳이 무척이나 많은 팀이라는 생각이다. Big4 가운데 아스널만 빼놓고 모두 해봤는데 역시 맨유나 첼시, 리버풀에 비하면 아직 많은 점이 부족하다. 특히 키퍼와 윙백의 자리가 허술하다는 점, 그리고 특급 공격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보강할 부분이 많다. 팀의 주축을 이루는 몇몇 선수를 대신할 백업 요원이 부족한 점도 큰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시티는 아주 즐겁게 FM을 즐길만한 팀이다. 맨시티는 FM 2009에서 기대되는 팀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다른 그럼 1부 리그, 별들의 전쟁은 어떻게 막을 내렸을까? 결과만 잠깐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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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 업그레이드

워드프레스를 업그래이드 했다. 기존의 2.6버전에서 2.6.1버전으로 업그래이드를 했다. 사실은 별로 하기 귀찮았는데 어째 트랙백 보내기가 잘 안되어서 업그래이드 해버렸다.

이미 핑을 보냈습니다 라고 뜨고 트랙백 보낸 주소에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인데 원인을 모르겠다. 트랙백을 보내고자 하는 블로그에도 트랙백이 도착해있지 않고… 여튼 버전업한 다음에는 그럭저럭 되는 것 같다. 워드프레스의 까다로운 점이라면 가벼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답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ㅡㅡ;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한글 사용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해결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영문으로야 정보가 많기는 한데 한국 인터넷 환경 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일이 다반사다.

2.6.1로 업그래이드하면서 082net(082님이라고 해야 하나??)에서 EUC-KR 트랙백 플러그인를 해결하는 플러그인을 받았다. 워드프레스의 고질적 문제 가운데 하나가 한글로 트랙백을 주고 받을 때 일부 블로그에서 한글이 깨지기도 한다는 점이 었다. 설치가 워낙 간단한 바람에 눈깜빡할 사이에 설치해버렸다. 네이버 테터툴즈 등에 트랙백을 보내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 (사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함부로 남의 블로그에 연습 트랙백을 쏘아댈 수가 없어서.. ^^; 아마도 문제 없을 듯!)

그리고 스팸을 걸러주는 Akismet도 업데이트를 시켜주었다. 새로운 워드프레스 버전이나 플러그인 버전이 나올경우 대쉬보드에서 표시해주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

근데… ‘터보’ 기능이 사파리에서는 설치가 안된다. 파폭에서만 설치가 된다. 쳇! 블로깅 할땐 파폭을 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