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고 이창진, 이영민 타격상 수상 :: 2008/11/18 20:44
인천고를 올 시즌 전국대회 2관왕(미추홀기, 대붕기)으로 이끈 인천고 2학년 이창진이 올해 고교 야구 타자 중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대한야구협회는 18일 '2008년 야구인의 밤' 행사를 맞아 이창진을 비롯한 올해 아마야구 부문별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창진은 올해 미추홀기에서 최다도루상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올 시즌 전국대회에서 0.411(60타석 56타수 23안타)의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김일배 지도자상'은 제42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와 제89회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우승을 이끈 덕수고 정윤진 감독에게 돌아갔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두산 김경문 감독과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남고 이종운 감독이 특별상을 받는다.
◇ 2008년 야구인의 밤 수상자 명단
▲김일배 지도자상 = 정윤진 덕수고 감독
▲이영민 타격상 = 인천고 이창진
▲우수선수상 = 화정초등학교 박원철, 마산동중 박헌욱, 덕수고 성영훈 성균관대 황재규, 단국대 이종환
▲공로상 = 노태주 부산시 협회 감사, 곽완길 충북협회 고문, 정찬복 충남협회장
이병록 전남협회 총무이사. 박창선 제주협회 부회장
▲우수 심판상 = 김형주
▲우수 직원상 = 양기태 협회 총무팀장
▲특별상 = 김경문 두산베어스 감독, 이종운 경남고 감독
한편, '2008년 야구인의 밤' 행사는 12월8일 오후 6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영민 타격상이란?
먼저, 이영민씨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영민은 1928년 경성의전 주최 야구대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홈런을 날려 타격왕이 되었던 한국의 체육인.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런던 올림픽 조사연구원,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이영민 타격상은 아마야구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일제시대 천재 야구선수이자 한국야구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한 이영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 1958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후 51년째를 맞은 이영민 타격상은 전국 9개 대회(황금사자기,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무등기, 대붕기, 화랑대기, 미추홀기, 전국체전) 중 5개 이상 대회에서 15경기 이상 출전하고 규정타석(60타석)을 채운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타자에게 주는 상이다. 한 마디로 해당 년도에 전국에서 가장 잘 치는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역대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1958년 김동주 (경남고)
1959년 백인천 (경동고) 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0.412)
1960년 최관수 (동산고)
1961년 조정일 (성동고)
1962년 정인성 (광주사레지오고)
1963년 이철화 (부산고)
1964년 김영생 (대구상고)
1965년 이광환 (중앙고)
1966년 박용해 (대구상고)
1967년 오영복 (대전고)
1968년 김영신 (대구상고)
1969년 정장헌 (선린상고)
1970년 신중국 (부산고)
1971년 정현발 (경북고)
1972년 정순명 (충암고)
1973년 김일권 (군산상고) 1982년~1984년 도루왕, 1985년 도루 2위
1974년 박명선 (인천고)
1975년 이효헌 (마산상고)
1976년 임정면 (마산상고)
1977년 이만수 (대구상고)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 트리플크라운 달성
1978년 김남수 (신일고)
1979년 김이수 (부산상고)
1980년 김건우 (선린상고) 1986년 신인왕 수상 이후 부상으로 몰락
1981년 구 윤 (경북고)
1982년 김성범 (포철공고)
1983년 한경수 (군산상고)
1984년 주음현 (광주일고)
1985년 김경기 (인천고) 태평양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1986년 김현철 (경북고)
1987년 김 훈 (경남고)
1988년 곽상선 (군산상고)
1989년 정진식 (경남고)
1990년 강준기 (공주고)
1991년 강 혁 (신일고)
1992년 노상진 (배명고)
1993년 조 현 (신일고)
1994년 김건덕 (경남상고)
1995년 박현철 (광주일고)
1996년 박진형 (경동고)
1997년 신민기 (경남고)
1998년 신민기 (경남고) 2년 연속 수상
1999년 백정훈 (광주상고)
2000년 수상자 없음
2001년 황성용 (부산고)
2002년 서 정 (광주일고)
2003년 박정태 (부산고)
2004년 최 정 (유신고)
2005년 김현수 (신일고)
2006년 전동수 (덕수정보고)
2007년 김경한 (장충고)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한국 프로 야구 출범 이후 이 상을 수상한 선수가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실제로 1980년 수상자인 김건우는 프로데뷔 첫 해 18승을 거두며 1986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화려한 시작을 했으나 이듬해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서 조용히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다. 김건우 이후에도 역시나 성공한 선수는 없었으며, 1991년 수상자 강혁은 0.452의 타율로 당시 메이저리거급 타격 자질이라 불리며 주목을 받았으나 스카우트 파동으로 희생되고 만다. 강혁은 한양대와 OB(두산)간의 이중계약에 휘말려 KBO에서 영구제명 처분을 받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징계는 풀렸지만 계속된 부상과 슬럼프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이 현상은 저주라기보다는 고교 야구 5~8개 대회로는 데이터 샘플이 적고 상대한 투수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율 기록만 가지고 선발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기준으로는 타자로서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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